우열 선악 개성 다양성
"개념적으로 추리하라"는 말이 있고 "관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죠. 인간의 관념이란 90% 이상이 잘못된 것이고 개념이란 정확한 관념이라는 의미이므로 개념은 진리의 특별한 시각의 표현일 수 있으며 개념적으로 추리한다는 것은 기존의 진리에서 새로운 진리, 올바른 판단을 산출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죠.
우열이란 객관적으로 명백히 존재하는 실체이죠. 4는 5보다 하나가 적죠. 5가 기준이라면 하나가 모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온전한 구형이냐 하는 면에 있어서도 그 기준에 미달되는 정도는 다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열이 분명한 것이죠.
인생의 목적을 영적 성장 즉 장성이라고 한다면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점에 있어서 발전하고자 하면 처음에는 그 질을 나타내는 수치가 0이죠. 1,2,3,4와 같이 발전하는 것이죠. 누구는 6인 수준이고 누구는 15인 과정이 당연히 존재하죠. 우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우월감이나 열등감이죠. 그것은 터무니없이 모순되고 부당한 감정인 것이죠.
문제가 되는 것은 0이 아니라 -인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 사랑의 감정을 발전시켜가려고 할 수 있죠. 물론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일 것이고 그 가치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그 감정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
문제는 부당하게 미움을 갖는 것이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그것은 -인 것이고 책망을 받고 시정이 되어 없애야 하는 것이죠. 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미워했습니다. 그에 해당되죠.
행복하지 않은 것은 행복이라는 면에 있어서 수치가 0인 것이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인 것이죠. 악한 것(badness)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은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은 악한 것이죠.
개성이나 다양성은 별개인 것입니다. 악한 것을 다양성 중에 하나라든지 개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미화하거나 정당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성격이 까칠하다는 것은 개성이 아니라 결함이고 악함이라는 것입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도 그러하죠.
인간은 생긴 것이 이러저러하죠. 지금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은 유전적인 개성의 온전한 발현이 아니라 미적인 결함입니다. 악함인 것이죠. 누구나 다 -인데 -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다 시정되어야 할 점들이죠. 발전해야 될 면이라기보다요. 서로가 다 그러하다 보니 또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 것이니 괜히 스트레스받게 그 점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죠.
인간의 생각과 감정들이 그러한 것과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내 생각은 이래"라고 할 때 그것은 "사견(私見)은 사견(邪見)"이라는 원칙에 따라 틀린 것입니다. 개성적인 생각이 아니라 틀린 생각이고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죠. 인간의 감정들도 악한 것들이 많습니다. 갖지 말아야 하는 감정들이죠. 습관이나 성격, 태도 같은 것들도 그런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우리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렇게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화를 잘 냄'은 악이죠.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은 열등한 정도가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수치가 기준에 미달한 것이 아니라 -인 것이죠. 평가의 대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결함 혹은 악함을 개성이나 다양성으로 보는 데는 정당한 비난을 피하려 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죠.
인간들의 신체 즉 외모는 그 생각이나 감정, 습관이나 성격, 태도가 그러한 것처럼 열등한 것이 아니라 악한(bad) 것이라 할 수 있죠. 개념상 그러하다는 것이죠. 비교적으로 열등한 것은 필연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야 하는 성격이 아니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속성인 것이죠.
열등한 것은 전혀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고 비난의 대상도 아닙니다. 인간의 후각은 개의 후각에 비해 비교도 안되게 열등하지만 그것은 괴로움의 원인도, 비난의 원인도 아니지요. 발전의 와중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발전한 사람보다 그 점에 있어 열등하고 미래의 더 발전된 자신과 비교해도 열등하죠. 열등이란 본질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개성의 차이나 다양성은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것이 아닌데 그런 것으로 생각하여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는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어떤 나라는 사회주의를 선택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다양성이 아니고 다 악한 것들입니다. "너는 기독교야? 나는 이슬람인데" 하는 것도 그러하죠.
결론적으로는 선악을 분별 못하고 다양성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과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악한 것을 시정하는 사람들은 신체적으로도 그렇게 됩니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는 그때 가장 못생긴 사람이 지금의 가장 잘 생긴 사람보다 더 잘 생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모델도 되고 연예인도 되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화장을 잘하고 성형을 잘해도 그 기형적인(?) 형태를 없앨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면요. 사람들은 헛된 것을 너무 열렬히 추구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