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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Nov 03. 2023

스스로 알기에

스스로 알기에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계속 나를 괴롭히니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누가 18:5)  이 구철은 인간이 자신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 스스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자신이 진화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 스스로 알 수 있죠. 살펴보지 않았다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신이 무신론자임과 또 자신이 무신론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또한 의식하고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 정도로 알 수 있는 기능 자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굳이 질문을 하면 그런 기능 자체도 진화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대답할 수는 있죠. 일관성 있게 만들려면요. 


인간은 모든 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죠. 신이나 우주에 대해서도요. 만물의 중심이 되어서요. 인간이 이러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하나의 대상으로 두고 초월적으로 관조하고 사유할 수 있죠. 물론 한계는 있죠. 결국은 수렴 순환하게 되어 있죠.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는 "하느님의 형상대로"라는 원칙에서 찾을 수 있죠. 인간은 심지어 신도 대상으로 삼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려 하죠. 


그런데 그러한 기능 자체에 가장 큰 신성이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가 그런 기능을 부여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의지나 자유의 법칙도 이에나 나온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은 이러한 신성한 것을 받았기에 번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마치 신인 것처럼 주체적인 기능을 받아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그가 그런 기능을 사용하여 "신이란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은 진화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야." 하고 무의식적으로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그런 결론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살았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에게 있다는 것이죠. 


인간의 이러한 자유성은 천사들이나 귀신들도 터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단 그들은 인간이 그러한 기능들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죠. 


그러한 인간들이 신적인 존재라면 참으로 비천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되죠. 그 고귀한 것을 스스로 천하게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사실은 무지해서 그러한 것이기도 하죠. 


창조주 자신도 인간 개개인이 그런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이런 내용을 글로, 창조에 대한 옹호를 피력하여 전달하고자 함도요. 또한 저도 스스로 제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창조주가 부여한 신성하고 신비스럽고 오묘하기 짝이 없는 그 기능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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