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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Aug 08. 2021

한계의 법칙

사고학 : 순환의 벽의 법칙

한계의 법칙    


인간에게는 무수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는 것(그것을 인식하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의식 때문이죠. 이 다음부터는 똑같은 말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죠. 그러한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관으로 알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직관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역시 직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점 역시 같은 표현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다면 사실 그 주장 자체는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없다.” 는 명제가 진리가 아니라면 진리는 있는 것이 되어 자기파괴를 일으키죠. 그런데 진리는 존재한다고 할 때 그 명제는 그런 모순에 봉착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존재한다.”는 진리이다.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은 진리이다. 같은 내용이 포함된 것이 반복되면서 동일하게 확장되고 무한히 그렇게 되지만 본질상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3차 함수를 미분하면 2차 함수, 2차 함수를 미분하면 1차 함수, 1차 함수를 비분하면 상수가 나오고 그것을 미분하면 0이 되고 0을 미분하면 또 0이고 계속 그렇게 되는 것이죠. 논리에 있어서도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엄마는? 날 낳아준 여자

여자는? 여성인 사람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

생물은? 생명이 있는 물체

물체는? 형태가 있는 사물

사물은? 실제적인 존재

존재는? 존재

존재는? 존재.......     

어떤 정의의 상위개념이 범주에까지 이르면 그 범주에서 순환될 수밖에 없지요.      


생각이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궁극에 이르면 동일하게 반복되는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를 ‘순환의 벽의 법칙’이라고 표현해 봅니다.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수학의 수열에서의 진동처럼 상이한 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거짓이 되는 것이죠. 이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죠. ‘진리는 없다’가 진리라고 하면 진리가 있는 것이 되고 ‘진리가 있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명제가 참이면 참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어떤 사형수가 총살형이나 교수형 중 어떤 방법으로 사형당할지 알면 교수형에 처해 진다고 할 때 그 사형수가 총살형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죠. 그래서 총살형을 시키려니 맞혔으니 교수형을 시켜야 하고 교수형을 시키려니 틀렸으니 총살형을 시켜야 하고 무한히 딜레마가 반복되죠. 총살형과 교수형 사이에서 말이죠. 수학적으로 보면 진동현상이 생기는 것이죠. 궤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리적 생리적으로도 여러 한계 하에 놓여 있고 인간의 마음, 심리 즉 의식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이 있죠. 그리고 이 한계를 안다 해도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관념이나 욕망이라는 기능이 있죠. 어떤 사상을 어떤 사람에게 전달하였는데 “그것은 당신의 관념에 불과한 거야.”라는 응답을 받았을 때 사실 그러한 반응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도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관념을 초월한 어떤 것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죠. 어떤 생각을 하던 그것은 생각 즉 관념이어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올바른 관념을 갖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라 생각하여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소위 해탈의 경지에 이르려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 일종의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을 정의하기에 따라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이라면 그것에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욕망을 갖는 것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얼굴이 있다고 할 때 무표정도 표정이라면 표정에서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이 미덕인 바와 같습니다.      


인간은 한계를 알아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 한계 안에서 겸허하게 순응하고 긍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그 한계를 오히려 활용하여 삶에 주어진 목적을 달성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법칙을 모르면 헛되이 뭔가를 추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종교나 뉴에이지류(명상을 수반하는 준 종교적 성격의 모든 것)에서 추구하는 어떤 것은 본질상 이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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