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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

by 법칙전달자

도시들


고대로부터 인간들은 도시들을 개발하여 모여 살았죠. 상하수도 심지어 수세식화장실까지 갖춘 고대 문명도시들이 있다고 하죠. 이미 4,000년 이전인데도요. 성서에도 우르 등 고대의 유명한 도시들이 언급되어 있고 아브라함도 거기에 살았었죠.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건축한 미래의 도시를 향해 불편한 방랑생활을 했죠. 풍요롭고 안정되고 편리한 도시를 떠나서요. 사도들도 영속하지 못할 세속도시가 아니라 장차 올 도시를 바라본다고 했죠. 그 당시 예루살렘도 로마도 그들이 마음을 두는 것은 아니고 그들은 외국인이나 임시거주자들처럼 살았다고 했습니다.


하늘에도 영적 피조물들이 거하는 어떤 도시들이 있을까요?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이 있긴 한데요. 그건 잘 모릅니다.


신세계에서의 도시들은 인간 역사상의 이전 어느 도시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빈민지역이란 있을 수 없죠. 지금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구축된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죠. 그러나 과학 기술 곧 지혜보다도 사랑이 더 반영된 도시가 될 것입니다. 인간 신체에 유익한 자연의 파동이 전혀 차단되지 않는 곳이 되겠죠.


고대에는 무신론자가 없었죠. 영적 존재들이 인간들과 함께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고대의 많은 문헌들은 예외 없이 생생하게 영계를 언급하고 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신이 세상을 무신적인 영으로 통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신접무당들의 말에서도 그 실마리를 구할 수 있죠. 무신론 혹은 반신론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죠. 르네상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해서 드디어는 대세가 되었죠. 진화론과 유물론의 등장 그리고 과학의 발달이라는 것이 가속화했죠.


오늘 종교인의 수는 이전 어느 때보다 많을 수 있죠. 그러나 이미 고대나 중세와 비교해서 근본적인 성격을 달리한다고 합니다. 신앙은 이성으로 성서는 과학으로 대치되었다고 선언된 지도 100년이 훨씬 넘었죠. 이제 종교는 생활에 있어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한 것이 되었죠. 국가나 돈, 과학이나 교육보다 후순위죠. 학교나 사업을 포기하면서 종교를 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가 있어야 종교가 있다고 하는 것이고 이념을 더 앞세웁니다. 종교인의 수치는 허수인 것이죠.


그러나 우주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발견하기 전에도 신대륙이 있었고 사람이 살고 있었죠. 마찬가지로 신세계의 도시들은 이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시공의 개념이 통일되어 있죠. 공간의 이동이나 시간의 경과나 본질상 다를 바 없다고 하는 것이죠. 특히 성서에는 미래의 일을 과거나 현재의 기정사실인 것처럼 시제도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인간이 미래에 가서야 그때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뉴욕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뉴욕에 도착해서 그것을 보았을 때 뉴욕이 있게 된 것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안드로메다 은하가 인간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 생긴 것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무생물적인 요소들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며 창조주의 관점에서는 현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도시에 살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도시로 향하는 행동을 실제로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도시에 없게 되죠.


미래의 진실은 없다는 원칙은 의식을 가진 존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도시라고 성서에 언급된 것들은 지금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의 과학 할 수 있는 능력은 창조주에 의해 부여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학의 관점에서 시공을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인간 개개인의 통념과 일치하지 않다해서 틀렸다고 하는 것은 잘 못이죠. 인간은 과학이 밝혀낸 많은 것들을 개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이라는 권위 때문에 틀렸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미래의 도시들이 그곳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슴 설레게 하면서 기다려지고 있죠. 그들은 현재 임시거주자처럼 나그네처럼 세상을 살고 있죠.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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