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성들을
어떤 특성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차원에서의 생각들이 있죠.
그런데 특성들이란 무엇이며 왜 그런 특성들을 가져야 하는지 하는 차원에서의 생각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성들이 무엇인지를 왜 생각하게 되는가 하는 차원의 생각이 있습니다.
겸손, 참을성, 온유, 사려 깊음, 친절. 재치, 유머성 같은 특성들을 발전시킬 목표를 세우고 각 특성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성들이란 무엇이며 왜 발전시켜야 합니까? 자연물 즉 물질들에는 고유한 특징들이 있고 그것은 그것은 그렇게 주어진 것이죠. 즉 창조주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것이죠. 산소나 물이 반드시 있어야 하죠. 그 밖에도 각종 금속이나 목재..... 반도체 같은 것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죠. 인간은 쾌적하고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데 그것들이 필요하죠 그러한 물질들이 갖는 고유의 특성들 때문에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의 특성이란 물질에서의 특성처럼 자동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닌데 역시 삶의 목적에 거스르는 고통이 아니라 그 목적인 행복에 부합되는, 그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인데 이는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목표과 계획을 세우고 교육과 훈련을 받아가면서 갖게 되는 것들이죠. 그래야 그것으로 서로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죠. 교만이라는 특성은 자신과 남에게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되지만 겸손과 온유는 사람의 호의를 얻고 신뢰와 존중을 받는데 필수이죠. 그래서 인간이란 좋은 특성들을 지니려고 해야 하고 좋지 않은 특성들을 없애가야 하죠.
그런데 이 특성은 사유의 한 소재일 뿐이죠. 관계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존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죠. 똑 '특성', '관계', '존재'는 언어이며 개념이죠. 그러므로 언어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사유의 대상이 옮겨올 수 있죠. 또 이러한 생각의 흐름이나 사유 자체에 대해서도요. 대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주체인 자아라는 것에 대해서도요. 물론 과거의 사상가들이 다 전문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하여 나름의 결론을 내린 면들이죠. 결국은 소위 형이상학 차원에 이르게 되는데 이 형이상학 자체에 대한 것도 형이상학이라 순환의 벽에 다다른다 할 수 있습니다.
혼란에 빠지게 될 수 있지만 긍정법칙 같은 공식들을 분명한 지침으로 삼아 적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생각을 자유분방하고 산만한, 방황하는 상황에 맡겨 둘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통제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주변에 슬픔에 빠져있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어 돕고자 할 때 자신이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특성이나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들이 부족하여 기꺼이 돕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면 그 없는 것들을 생기게 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바람직한 특성이 발전하는 것이며 인생의 목적인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지침은 당연히 성경에 있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적용시켜 이미 장성의 길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인간은 생각의 대상과 성격, 방향과 차원을 인간 의식의 통제하에 두어 관리하면서 영적 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