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항거
독재자 혹은 제국주의자라고 평가받는 통치자나 세력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 부국 하거나 홍익인간하려 하죠. 널리 복지화하려는 나름의 고상한 신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면서 동조자들을 규합해 세력을 형성해 저항하려 하죠. 그러다 목숨을 잃게 되고 그 저항운동이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의인으로 기림을 받고 보상도 받게 되죠.
남한 중심으로 생각하면 항일운동이나 419나 625 때 죽은 사람들이 그에 해당하죠.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상은 실패했고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독재 그리고 김일성의, 남한의 쓰레기 부르주아들을 청소하고 해방하여 한반도 전역을 통치하여 노동자천국의 지상낙원으로 만들려는 뜻도 실패했죠. 그런 것들이 실패했기에 죽은 사람들은 의로운 희생으로 기림을 받고 보상을 받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성공하여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졌다면 불온분자 반동분자들로 몰려 그런 식으로 기림을 받는 것은 턱도 없죠. 오히려 지금 친일파 혹은 빨갱이 가족으로 지탄받는 사람들이 영웅화되었을지 모릅니다.
의롭다는 것은 인간들의 자의적인 기준이죠.
남한에 사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 한민족, 민주주의자, 기독교인, 아버지, 삼상맨, 경상도사람, 보수우파 등등으로 정하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경우에 따라 부인하거나 삭제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정체성으로 고착되어서는 그의 삶이 영원히 삭제될 수 있습니다.
늦가을의 구름 없는 한 점 없는 높고 맑은 하늘은 단순하죠. 태양도 몇 조간은 직접 바라볼 수 있습니다. 눈 부시고 강렬하죠. 숲의 나무들과 거기에 아직 엉성하게 달려있는 나뭇잎들은 복잡한 모습들을 띄고 있습니다. 이 각각의 것들은 현저한 차이가 있지만 어울려서 자연의 신비를 연출합니다. 더 신비스러운 것은 그것들을 그렇게 느끼는 인간이죠. 인간의 의식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그의 의식의 상태 그에 반영되어 있는 올바른 인식과 아름다운 인격으로 정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분열적이고 자의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창조주의 관점에서 의로워야 의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