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갈 장면들
미친 짓이 정상적이고 모범적이기까지 된 세상이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머릿속에 그 한 장면이라도 떠오르는 것이 끔찍한 장면들만 있는 것이 이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세상과 장면들은 지나갈 것이며 기억나지도 않을 것이라는 창조주의 약속을 위안 삼아 인내하는 것이죠.
사우나에서 노인들이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최첨단 무기와 기기들로 완전무장한 정예전투 요원들이 어느 정도 안정성이 확보되었다는 지역을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의 병사가 숨어 있던 적 저격병의 총을 머리에 정확히 맞고 비명도 없이 툭툭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한 분이 "저렇게 죽는 것이 제일 행복한 거야."하고 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잘 먹고 편안하게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지 않더라는 등등 행복하게 죽은 사례들을 돌아가면서 언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요양원에서 오랜 기간 무의미한 연명을 하면서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사례들도 언급되었죠.
꼭 전쟁영화가 아니더라도 모든 영화들은 그 소재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죠.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그렇고 스토리도 그렇죠.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과 상황, 캐릭터들 뿐이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있을 수 있는 것들로 여기고 재미있어하죠. 얼마나 인간들의 의식이 비정상적인데 익숙해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영화 같으면 무기나 군인, 군사훈련 같은 것은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죠. 그러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들이 야기하는 파괴나 살인도 그렇게 여기죠.
물론 인간들은 죽음도 당연히 여깁니다. 총에 맞거나 칼에 베여 비명횡사하는 것은 조금 일찍 죽는 것으로, 일상사로 여기죠. 결코 그런 식으로 죽으려고 태어나 법 먹고 교육받고 하는 것이 아닐 텐데요.
전쟁드리마가 아니더라도 모든 스토리는 인간들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갈등과 왜곡된 캐릭터들을 그리고 있죠.
그러므로 모든 장면들이 비정상적인 것들입니다. 이상적인 인간 사회에 애초에 일어나지 조차 않을 일들이죠. 작가들이 억지로 그런 장면들을 연출한다기보다 인간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뜻에 의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을 거스른 인간의 의지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완전히 소멸되고 기억나지도 않게 된다는 것은 정말 위안이 되는 소식이자 약속입니다. (이사야 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