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가 그러하므로
성서에 기록된 말씀은 그것이 창조주가 우리 개개인에게 직접 전달하는 메시지인 것으로 생각을 해야, 즉 그렇게 믿어야 그 말씀에 힘이 생기고 권위가 주어져 그렇게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그러하므로 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자가당착적인 관념론에 빠져서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참된 유익을 얻지도 못합니다. 인간의 생각이 담긴 다른 저서들을 연구할 때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그것을 적용해 실제로 유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단지 관념의 증가로 끝나는 것은 본질상 쓸데없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 듣고 보고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생활에서의 적용이나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야고보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지적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하여 거짓된 생각으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며, 자기의 모든 길에서 불안정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여호와께 어떤 것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 1장)
지식은 왜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단지 정신을 살찌우려고 하는 것입니까? 사실 인간의 정신에서 나온 사상이 담긴 책을 공부한 것이라면 그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감상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겠죠. 또한 그런 것은 본질상 실용적인 가치가 약한 사변성인 것일 수 있죠.
인간의 생각이란 사람마다 달라서 이런 이론, 저런 이론, 이 철학자 저 철학자, 이 책, 저 책을 탐색하면서 섭렵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은 행동하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이념서적들은 그것들을 읽고 소위 의식화되어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활동이란 본질상 해로운 것입니다. 주장을 하고 시위를 하고 정파를 만들어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것이죠. 실제로 어떤 이념이 실현되어 진정한 복지사회나 지상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현 세상처럼 시끄러워질 뿐이죠.
"분쟁, 분열, 분파,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왕국은 이러한 사람들을 멸망하고 땅을 통치할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 5장) 사람들이 종교의 교리에 대한 지식, 정치적인 이념에 대한 지식들을 얻어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본질상 분열을 일으키는 해로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하느님의 생각이 아닌 그런 사상에 따라서는 그렇게 분열적으로 행동을 하죠.
성서도 다른 책을 읽듯이 그렇게 읽을지 모르지만 그게 과연 창조주의 말씀인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면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죠.
그런데 그러한 확신은 그렇게 믿어야지 하는 인위적인 의지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맑고 열려 있는 의식으로 존중심 있고 진지한 마음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죠.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상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주의 깊이 조사했다.(행 17:11)
이 때문에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신자들인 여러분 안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데전 2:13)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인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그러합니다.
증거가 너무 명백하여 그것을 진지하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