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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by 법칙전달자

사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빌립보 2:3.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재산이나 신분, 배경, 학벌, 지식이나 인품, 자신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대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사실, 정확한 정보에 따라 대우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는 단순히 원칙에 입각하여 대해야 합니다.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원칙이 있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원칙이 있으며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원칙들이 있죠. 악을 선으로 갚으라,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는 원칙들요.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원칙이 있죠.


그리고 위의 성구에서처럼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사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간주하는 것이죠.


갓 태어난 아기는 가장 무지하고 무능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경멸하지 않죠.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것처럼 그에게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그의 종이나 되는 것처럼 극진히 섬기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기본도리인 것입니다. 기본 도리라는 것은 진리의 한 의미이기도 하죠. 진리는 자연의 법칙과 같아서 거스르면 불행하게 되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게 되죠.


예수는 모든 면에서 다른 인간들에 비해 월등했죠. 그러나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다든지 고기를 구워 식당 종업원처럼 서빙을 하기도 하였죠.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위계질서나 사회에서의 계층구조라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상대가 지식이나 능력 등의 수준이 낮을수록 그에게 더 낮추어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가 그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그런 그를 보는 것은 그를 대하는 보람이고 자신의 삶의 기쁨이 될 수 있죠. 아이를 키워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과 보람이듯이 그러한 것입니다. 서로는 하나의 지체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영적 성장이라면 또 다른 자신인 동료인간의 성장 역시 그러한 것이 되어야죠. (롬 12:5)


세상에서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자기 아이에 대한 배타적인 경우 정도입니다. 접하는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타인인 것이죠. 타인이라는 의식을 기본적으로 깔고 대하는 것이죠. 세상에서의 인간들 사이의 태도나 관계는 결코 성서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죠. 사람사이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이 공식적인 조직들 사이에서는 더하죠, 나라들끼리는 살육무기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파멸의 결과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위구절에서의 법칙을 거슬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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