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知己)가 되어야
https://www.youtube.com/watch?v=rTE_ZJ6MSt4
등려군의 我只在乎你라는 노래인데 가사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知己)이 있다면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대목이 있죠.
그녀가 직접 지은 시에도 인생길은 알기 어렵고 지기는 만나기 힘들다는 대목이 있죠.
그 시에 그녀의 사후 그의 일곱 친구들이 곡을 붙인 노래가 성원(星愿)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kreUnw_AVU
저의 오랜 간의 주된 정서는 열등감과 허무감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누가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 오히여 그렇게 될까 봐 끔찍한 것이고 사람을 만나면 혹 그가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것이죠. 은둔 생황이 적합한 것이죠.
그런데 자기를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죠.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것은 어느 정도 본능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인데요. 그래도 제가 알게 된 사상을 전달하려는 것뿐이지 제 개인을 노출시키려는 것은 극구 피하려는 입장이죠. 그것은 불편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모순되게도 이처럼 일리고 있기는 한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그러한 인간의 욕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또 자신을 타인이 알아주었으면 할 정도로 인격을 아름답고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배양해 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사실 지기가 있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해 나름대로 유심히 살펴보면 그에게 그런 특별한 점이 없어 알아주려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온당치 못한 자기중심적인, 바람직하지 못한 에고의 작용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긴 합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욕이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는 것이죠. 만약 이러한 사적인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면 지기가 되어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 주제넘은 일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생각과 감정 혹은 사적인 상황을 부인하고 원칙에 따라, 사람을 접할 때 극진한 존중심과 친절로 그를 대한다는 것이죠. 마치 삶의 목적이나 되는 것처럼요. 순수하게 원칙에 입각해서요.
대개 현재 세상의 사람들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죠. 그의 돈이나 지위 등의 어떤 조건으로 인해 예를 들면 '고객님'하면서 상업적 친절 같은 것은 받을 수 있죠. 부하직원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죠.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그런 것일 수 있죠.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원칙에 따라 나타내지는 친절과 존중이라면 노숙자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내야죠.
그러나 또 그런 경우에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이용하려고 이러나 하고 거부될 수도 있죠. 그러한 것은 이 세상에서 정싱적인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가끔 보는 이웃이라면 저 사람은 원래 겸손하고 친절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호의적인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결같고 반복적이고 적극적이고 또 사적으로 그러한 것 같다면 그는 저 사람이 날 알아주나 보다 하고 호의를 가질 수 있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그가 풍부한 영적 자신이 있어 배울 것이라도 있는가 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그가 그런 자격이 있다면 영적으로 돕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되려면 자신이 그러한 영적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죠.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려면 자신에게 그것이 있어야 하죠. 정신과 가슴에 풍성한 진리의 지식과 사랑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지기가 되어 그가 진정한 친구를 얻는 기쁨을 누리고 결국 그도 그러한 사람이 되게 돕는 것이 가능한 것이죠. 결국 그는 나중에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그런 지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모든 사람과 이런 관계 즉 서로 진정한 지기가 될 수 있게 관계를 확장시켜 나아가야죠. 창조주를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