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주신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인간의 생각이란 결론이 없을 수도 있고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죠. 생각을 하긴 하지만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알 수도 없습니다.
통치자들도 재벌들도 정치인들도 어떤 목적을 위해 많은 생각들을 할 것입니다. 심사숙고 끝에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문제의 해법이라고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식의 생각들로 운영되어 온 세상들은 어떻고 개인 사생활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 속사람의 모습, 인격들은요?
어떻게 생각들이 성공적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생각을 만드신 분에게 그 답이 있죠.
오 나의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이 하신 일이, 당신의 놀라운 일과 우리에 대한 생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당신에게 비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 알리려 해도 너무 많아 열거할 수 없습니다!(시 40:5)
그분의 창조 업적도 놀랍고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사람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분이 없는 것 같아 대부분 사람들은 무신적이지만 그분 자신, 생각을 지으신 분은 인간들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나는 힘없고 가난하니 여호와께서 나에게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17)
비유적으로 세속적으로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영적인 필요를 느낄 가능성이 많죠. 창조주에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갈망하고 기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가 실제 존재함을 인식하고 창조주에게 희망이 있다는 기대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내가 여호와께 진지하게 희망을 두었더니, 내게 귀를 기울이시고 도와 달라는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1)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바라지 않으시고 내가 들을 수 있게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6)
눈은 있어고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가운데서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과분한 축복이죠.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람아,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분이 네게 알려 주셨다.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단지 공의를 행하고 사랑의 친절을 소중히 여기며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사람들은 세속국가를 섬긴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열심히 일해서 세금도 내야 되고 이자나 세도 내야 하고 경우에 따라 목숨도 바쳐야 하죠. 그런데 창조주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죠.
이러한 진리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귀가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니, 당신의 법이 내 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8)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이르게 되면 그 뜻을 행하는 것이 기쁨이 되죠.
내가 당신의 의를 마음속에 덮어 두지 않고 당신의 충실함과 구원을 알리며 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랑과 진리를 숨기지 않습니다.(10) 당연히 그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죠.
여호와를 신뢰하는 이, 반항적인 자들이나 거짓된 자들을 바라보지 않는 이는 행복합니다.(4)
사람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희망을 두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에 왕국에 대해서 반항적인 자들이며 그 속성이 거짓된 자들입니다. 사람들도 그러함을 알고 있기는 하죠. 그래서 일정 기간만 통치하게 하고 자꾸 바꾸는 것이죠. 믿을 수 없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창조주나 그분의 왕국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별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죠.
오 여호와여, 당신의 자비를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항상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랑과 진리로 보호해 주십시오. 셀 수 없이 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많은 잘못에 짓눌려 앞을 볼 수 없으니 그것이 내 머리카락보다 많아 나는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오 여호와여, 기꺼이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11~13)
다윗은 누구보다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죠. 감히 거룩한 창조주에게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너무 뻔뻔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위의 기도는 대부분의 죄 많은 인간들에게 위안이 됩니다. 이 무신적 세상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창조주를 인정하느냐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보시죠. 인간이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의 허다하고 심각한 죄들은 간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찾는 자들은 당신 안에서 환희에 넘쳐 기뻐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드높여지시기를” 하고 늘 말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알려준 모범기도의 첫마디도 그분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것이죠. 즉 높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 6:9)
창조주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죠.
예로부터 인간들의 나라에서도 역모죄를 가장 크게 다루었죠. 창조주도 그분 자신의 존재나 창조주로서, 통치자로서 인정하는 생각이 인간 정신에 있느냐 하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다윗처럼 아무리 죄가 많아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축복해 주었죠. 세속적으로는 힘이 없고 가난하고 심지어 재앙이라고 할 만한 상황에 처해서 -그것도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어떻게 벗어날까 하고 많은 생각을 합니까?
그럼 이상이 인간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 창조주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