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려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원칙이 있죠.(행 20:35) 누구든 베푸는 입장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것은 기쁜 상황은 아니죠. 호의를 얻기 위한 선물을 받는 것하고 곤경에 처해 도움을 받는 것 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생긴 의무감 때문에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줄 수 있는 풍요로운 입장이 되는 것은 누구나 원할 것입니다.
주기 위해서는 주고자 하는 그 이상의 것이 자신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죠. 이것은 물질적인 것이건 영적인 것이건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준만큼 줄어들지만 영적인 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준다는 것은 그에게 없는 것을 있게 하거나 적거나 부족한 것을 많게 하거나 보충해 주는 것을 의미하죠.
교육자는 피교육자에게 없는 지식을 갖게 해 줄 수 있죠. 자신이 알고 있어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죠.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전달해 주어도 자신의 것이 줄어들지 않죠.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대한 주된 책임이 있습니다. 뭔가 준다는 것은 그에게 그것이 유익이 되거나 행복이 되기 때문이죠.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특성들이 필요합니다. 갖추어져야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특성들도 많이 있죠. 그러므로 자녀가 그런 것을 지니지 못한 것을 보면 우려가 됩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치거나 징계하려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자녀에게 갖기를 원하는 그런 것이 부모에게 갖추어져 있지 못하면서 욕심에 치우쳐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하죠. 자녀가 어떤 좋은 습관이나 미덕을 갖게 하려면 부모가 이미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말은 잘 안 듣지만 흉내는 잘 낸다는 말이 있죠.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이 갖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꼭 교사가 학생에게, 부모가 자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나름 그 책임을 이행한다고 뭔가 교훈적인 얘기를 하려는 경우가 있죠. 머릿속에서 명문으로 연설문을 짜고 몇 번 연습하여 공개석상에서 연설식으로 혹은 웅변조로 뭔가 말하는 경우들이 있죠. 그 내용이 아무리 고상하다 해도 그 내용이 이미 자신에게 인격적 자산으로 영혼화되어 있지 않는데 과연 남이 그렇게 되게 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창조의식이 있지 않은 사람의 머릿속에 타인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그런 영적 자산이 존재할리 만무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에 있어 꼭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고 할 만큼 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격의 주된 면들에 대해서도요.
사람들은 대개 부나 명예를 좇아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 성공하였다면 물질적으로는 보란 듯이 기부행위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의 말에서 반영되는 그의 인격은 역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는 확인하기 힘든 것이죠.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 옆에만 있어도 마음이 편하고 뭔가 얻어지는 것이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접할 때마다 배우는 것 즉 받는 것이 있는 것이죠. 미팅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을 얻어서 가며 자신의 영적 부가 증가되는 것이죠.
그 사람이 겸손에 대해 강조하지 않아도, 그 주제로 연설하지 않았어도 겸손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죠. 그에게 그 자산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사려 깊음이라고 하면 자신에게 다소간 있는 그 사려 깊음이라는 특성은 누구에서 선물 받은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죠.
영적으로 주는 것이란 이와 같아서 그것이 자신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이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죠.
타인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주고 싶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이미 자신에게 풍요롭게 열매 맺고 있는 것인지 먼저 확인해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실제로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생기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