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현 상태에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누리려 하지 않고 욕망하지도 않죠.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고 돈이 있어야 더 많이 더 자극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죠. 자신이 쾌락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 죽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 제도에 따라, 공기의 권세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는 한때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서 육체와 우리 생각의 뜻대로 행동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1~3)
성서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죽어있는 사람 그리고 진노의 자녀라고 표현하죠. 영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즉 사탄에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자아제일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라는 공기 즉 영에 따라서요.
사탄은 하와에게 창조주는 인간사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있고 행복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데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죠. 그런데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후 창조주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죠. 그러자 그 두 사람의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창 3:7)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서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창 3:22)
눈이 열리게 되었다고 하고 있고 하느님과 같이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죠. 마치 사탄의 주장이 참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 성서의 표현의 객관성으로 인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죠.
눈이 열렸다는 것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느님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그 지적 능력이 그렇게 우수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제넘게도 자신이 할 능력이 없는 것을 하겠다고 떠 안게 된 것을 의미하죠.
인간은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그것을 하려고 한 나머지 제각기 자의적으로 그렇게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분열과 혼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죠. 인간이 느끼는 많은 부조리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 즉 모종의 불행의 원인도 소위 눈이 열림으로 인함이죠.
이는 악이나 어둠에 대한 악한 집착도 성서에 사랑이라고 표현되어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표현의 객관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랑도 해로운 것이 있는 것이죠.
눈이 열리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느님과 같이 된 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것처럼 결과가 파멸적인 것이죠.
서두의 구절에서 죽어 있다고 하는 것은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몹시 결핍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죠.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으로 인한 것이죠.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신과 남에게 불행과 고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생생하게 살아있어 열심히 돈을 벌어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죽어 있는 것이고 그 상태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문자적으로도 영원히 죽게 되죠. 그러면 사람이 아닌 것이죠.
인간은 아직 그런 면에서 창조주의 마련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기회가 있습니다. 산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자비가 풍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큰 사랑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우리가 범죄 가운데 죽어 있는데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과분한 친절에 의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엡 2: 4,5)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