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인간은 어떤 원인에 의해 심하게 자가당착적인 사고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도 그렇다는 것을 모르죠. 기본을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져 있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죠. 의식이라는 것은 나중에 생기는 것이죠. 주어진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요.
우선 생명의 전달은 부모에게서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인 남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들의 출산과 부양을 통해 우선 신체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교육을 통해 의식은 나중에 생기는 것이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나는 인간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고 어떤 동물에 의해서 태어났는지가 궁금하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죠.
또한 인간은 언어도 주어져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과 어떤 언어인가 하는 것도 그러하죠. 저는 부모가 한국어를 사용하였으므로 한국어에 가장 익숙합니다. 지금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볼 것이라는 전제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있죠. 그것은 제게 주어진 언어적인 조건이며 저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죠. 앞으로도 한 동안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생각도 언어를 통해서 하는 것인데 그 언어를 통해 인간에게 언어가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한국어는 거짓된 것이며 사악한 것이므로 그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런 사상 자체를 한국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주로 한국어로 의식을 형성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영어로 표현한다면 10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중국어로 그렇게 한다면 20배 이상 다른 언어인 경우 100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면에서는 자가당착적인 생각에 빠져드는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한국어이고 영어 'God'을 번역한 것입니다. god은 보통 '신'으로 번역하죠. '하느님'이란 단지 신적 혹은 영적 인격체를 의미하지 않고 인간을 창조한 숭배의 대상인 유일신을 의미하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런 차이가 발생하죠. 하느님이란 하늘 즉 영적 존재임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고 하나님은 하나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모순되게도 기독교에서는 숭배의 대상을 셋이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하느님에 대해서는 여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상학적으로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대상이죠. 이를 모르던 시대에는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모색하여 나름의 규정을 하려 시도했지만 전혀 무의미한 것이죠.
그것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주어진 조건인 것입니다. 부모나 언어처럼요. 그것의 존재나 가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더 강하게 그러한 것이죠.
창조주나 창조의 개념도 그러하죠. 자신의 존재가 부모에서 기인하듯이 그보다 더 강하게 그러한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죠. 창조주의 이름은 한국어 발음으로는 여호와죠. 선택의 여지없이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죠.
그러한 기본을 배우지 않고 나중에 형성된 의식으로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부모나 언어의, 존재나 가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해괴한 부조리와 무지의 결과는 존재의 소멸로 귀결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