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라는

by 법칙전달자

흑백논리라는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일을 흑백 이분법으로 보려고만 하느냐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질은 죄를 가리려는 간교함과 파렴치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모든 일'이라는 전제를 깔므로써 왜곡이 노골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이죠.


사탄이 하와에게 "정말로 하느님이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라고 한 것과 비슷한 것이죠. 정당하지 못하다는 강한 암시를 하려는 수법인 것이죠.


명확한 것을 모호하게 하여 합당한 징계를 피해보겠다는 의도인 것이죠.


개념에도 모순관계와 반대관계가 있죠. 유무처럼 중간 입장이 없는 것과 대소처럼 무수한 중간입장이 있는 것이 있죠. 그것은 그 성격상 명확히 구별이 되죠. and와 or의 구분이 명확한 것처럼요. 그걸 구별 못하는 사람을 andor라고 한다고 하죠.


성서에는 '선악 간에 판단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전 12:13)

사람들은 양이든지 염소이든지요. (마태 25:32,33)

이점에 있어 중간입장,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죄인이어서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재판관에게 판결을 맡기고 목을 내놓고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들 사이에서는 서로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이 본래적으로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재판관에게 한시적으로 그런 권한이 허용되어 있다면 벌을 피하거나 적게 받기 위해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할 것이 아닌 것이죠.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범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어 털면 다 먼지가 나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대로 인정하면 그것이 선악 간에 악에 해당되는 것이 뻔하여서 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궁색하고 모순된 비루한 대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죠.


물론 애초에 도덕감 같은 것이 없어 눈앞의 이득 때문에 쉽게 법위반을 하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감각은 이미 무뎌져 있죠. 뇌물을 주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해서 좋고 받는 사람은 돈이 생겨서 좋은 것이죠. 성적 부도덕은 상대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서로가 쾌락을 느끼니 좋은 것이죠.


그래도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사람은 검사 그리고 판사 정도라고 할 수 있죠.

죄를, 악을 그 차제를 강하게 혐오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부모로부터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부모도 그런 사람들이 아니죠. 돈이 되느냐, 쾌락이 얻어지느냐, 명예가 얻어지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생활해 왔기 때문이죠. 자녀에게 악에 대한 미움을 형성시켜주지 못하죠.


아무튼 사람들은 죄의식은 없어 그것이 이득이나 쾌락을 가져다준다면 일단 얻고 본 다음 그로 인한 비난이나 벌은 피하려고 어떻게든 변명하고 구실을 대고 정당화하려 하고 모르는 일이라거나 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위장하려 하죠.


원칙에 입각한 의로운 판정이나 처사에 대해 흑백논리라고 하면서 구차하게 왜곡된 주장으로 대응하려 하는 것은 정말 비겁하고 비루한 태도여서 공의의 재판관에게 역겨움으로 배척되어 그의 파멸을 영구적이 되게 만들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인으로 인정이 되거나 양으로 구분되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솔직이 인정하고 그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어 이제는 유혹 자체를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죠. 겉으로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실제로 죄를 증오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 되었느냐 아니냐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백은 아니지만 흑도 아니라는 그런 입장은 없습니다.


이는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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