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로그램되지 않았음을 의미하죠. 지금은 잘 확립되어 있는 불확정성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죠.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겠는가?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가장 깊은 생각을 조사하여 각 사람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렘 17:9,10)
인과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그 행동의 결과에 따른 것이죠. '자연법칙'의 혹은 '창조법칙'의 정의도 "의식 있는 존재의 행동의 결과를 관장하는 우주적 영적 법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가인에게는 동생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벌을 받지 않았죠. 가인은 사전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을 다스리도록 경고를 받기도 하였죠. (창 4:6,7)
창조주를 제외한 다른 영들도 인간의 뇌 속을 훤히 들여다보거나 그 구조를 잘 알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것을 보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의 무모함이나 황당함 때문에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특히 지금처럼 심하게 불완전하게 된 인간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끔찍한 생각도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법가로 유명한 상앙도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던 그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발설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모의까지 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죠. 또한 어떤 행위를 하기는 했는데 그 결과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면 선뜻 처벌하기 곤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의 구절에서도 행위의 열매에 따라 처결됨을 알 수 있죠.
생각은 자유분방하게 떠 오르지만 그것이 뜻 즉 의지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자유의지를 소유한 존재자를 '자유도덕행위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의지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죠.
의지에 의하지 않고 인간에게는 어떤 생각도 떠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도덕적, 영적, 법적 표준에 따라 그것을 통제해야 하죠. 그것을 자유의지라고도 하는 '스스로에 대한 통치권'이라고 합니다.
그릇된 생각이 떠 올랐을 때 그것을 통제하지 않고 그에 따라 의지를 갖고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하여 사람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없죠. 그 정도까지 한 것은 변명할 수 없는 고의성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종교와 탐욕적인 상업 제도가 사라질 것이며, 역사 전반에 걸쳐 사람들을 압제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킨 정치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확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떠오른 그릇된 생각에 대해 심사숙고하여 교리를 만들거나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고 그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고통을 가하였죠. 죽인 사람들의 수도 부지기수이죠. 지금도 가난으로 받고 있는 고통들은 탐욕적인 상업제도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고의적임을 너머 치밀하게 계획하고 조직하고 세뇌하여 공식적으로 악을 행해왔죠. 인류는 대부분 그 범죄의 가담자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