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헛된 희망이나 기대는 좌절만 불러일으킬 뿐이고 절망을 돌이킬 수 없이 만들 뿐입니다. 무모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파멸을 굳힐 뿐입니다.
바둑에서 대마가 어렵게 된 경우에 실제로 살리는 수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리기를 포기하고 최대한 사석작전을 펼친다 해도 지고 있는 상황이면 대마를 살리거나 이기는 수를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새로 두는 것이 현명한 것이죠. 집의 형태가 5궁도화이면 죽은 것이죠.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세계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곤경에서 벗어나거나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현명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차피 안 되는 것, 그래도 생각이라도 긍정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태도는 경우에 따라 어리석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미련을 가지고 계속 집착하는 것보다 삭삭하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죠.
과거와 같은 혹은 문제를 일으킨 의식 수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죠. 백번 실패했는데 그 방법으로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 기대를 갖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류사회에서 불공정이 없어지고 정의가 실현될 것인가 하는 기대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합니다.
이기심. 이기적인 욕망과 죄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14, 15) 많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공정하게 대하여 이득을 취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기를 바라십니다.—고린도 전서 10:24.
무지.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불공정하게 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행동도 죄로 여기십니다. (로마서 10:3)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형되신 것도 사람들의 무지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역사상 가장 불공정한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사도행전 3:15, 17.
인간이 만든 제도의 실패. 이론적으로 이 세상의 정치, 상업, 종교 제도는 모두가 공정한 대우를 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그러한 제도들은 오히려 실수, 부정부패, 편견, 탐욕, 극도의 경제적 불평등, 편협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요인들은 모두 불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들 중 상당수는 흔히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인도를 무시하는 인간의 노력은 모두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전도서 8:9; 예레미야 10:23.
한 가지만 살펴보면 인간이 혹은 인간 집단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익집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에서도 존재의 목적은 '자신을 위함'인 것이죠. 그렇게 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애초에 대마는 살릴 수 없는 궁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나 공의의 실현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꼭 이런 측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무지에 의해 애초에 안 되는 것을 알려고 하거나 되게 만들려고 추진해 온 것들이 한둘이 아니죠.
유일한 지혜로운 선택은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혹은 지금까지와 같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죠. 쓰레기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7)
땅에서 주운 돌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애착이 생기는 법인데 수십 년 지녔던 의식 상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단호하게 그렇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