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하기 전까진
오늘날 어떤 부모도 이상적이진 않습니다. 자녀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면서 삶에서도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특히 영적인 양육에 정성을 들이는 부모는 극히 드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90% 이상은 욕쟁이이죠. 욕이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당 부분 부모의 탓인 것이죠.
그런 부실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립하기 전까진 부모의 지배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독립하게 되죠.
그런데 지금의 인간들은 사실상 인간으로서 독립할 자격도 여건도 갖추지 못합니다. 자신의 대한 통치능력이 없는 상태이지요. 이 세상 교육제도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식 자체를 제공하지 않죠. 부모도 교사도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을 통제하에 두려면 즉 노예와 같은 상태에 두려면 그런 지식을 제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는 독립할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주로 국가에게 맡기는 것이죠. 국가의 정책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하나의 위대한 사람은 하나의 정부와 같다고 했는 데 있는데 오늘날 국가 단위 즉 정부단위로는 독립된 인격체처럼 움직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국가 단위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되어 있지 않고 국가에 속해있는 것이죠.
그것은 자신이 하나의 정부로서의 역량이 없기 때문이죠. 사르트르가 말한 위대한 사람이 못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러한 위대한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는 예수의 제자들 각각을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죠.(계 1:6) 그런 자격은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죠. 사도들의 필서를 보면 그들이 그러한 영적 자격이 충분히 있음이 증명됩니다.
지상에서 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각각 그렇게 되는 데는 1,000년의 양육기간이 필요하죠.
이 부실한 교육풍토에서 100살도 못 사는 사람들이 갖출 수 있는 자격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의 인간들은 다 자립하기에 함량미달의 존재들이죠. 정부도 그런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죠. 그러나 세상꼴이나 나라꼴이 이 모양새인 것입니다.
이제 천년이 지나면 각 사람들 즉 각 정부들은 서로 사랑으로 온전히 연합하여 우주를 낙원으로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처럼 욕하고 치고받고 하는 인간들은 전혀 없게 되죠. 인간들 간의 즉 각 정부들 간의 대립이나 반목, 분열, 경쟁 같은 것은 그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부들이 있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인간들, 정부들은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죠. 짐승들보다 못하죠. 짐승들도 그런 식으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진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존재들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 목전에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