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시키면
호기심은 발전되면 의심이 될 수 있죠.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의문이 발전하여 각각 자유의지론과 결정론이 되었죠. 결정론은 예정론, 기계론, 운명론, 숙명론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죠. 물론 둘 다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기본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것은 창조주의 선언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임의로, 자유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창조주의 선언에 의하면 인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신 30:19)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에 예정이라는 개념은 나오죠. 그러나 이것은 비인격적인 조건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지 인간의 의식 즉 생각, 감정, 행동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오성이 발견하였듯이 인간의 의식은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것이죠. 그런데 심지어 기독교의 한 파인 칼뱅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틀린 것이죠.
인간의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느냐 하는 것은 인간이 선택할 수도 정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신도 정해 놓지 않았죠. 정해 놓았으면 불확정성이 아닙니다. 인간 프로그래머도 랜덤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죠. 그렇다면 그 프로그램 개발자도 컴퓨터가 어떤 수를 선택할지 모르는 것이죠. 알면 랜덤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렇게 프로그램했다는 것이므로 그런 표현은 적합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전혀 무능의 무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칙 혹은 성질로서 그러한 것이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그 떠오르는 생각을 중단할 것이냐 발전시킬 것이냐의 선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생각도 떠오를 수 있으므로 짐승과 성관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떠오를 수 있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바로 차단할 수 있고 또 그 생각을 발전시켜 수간이라는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인간에게는 물론 동성애 유전자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도 떠 오를 수 있고 그 생각을 차단하지 않고 발전시키면 그런 욕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천사들에게 원래 성욕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은 인간에게 원래 짐승과의 성관계에 대한 욕망이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는 있습니다. 인간으로 화신해서 인간 여자와 성관계를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발전시키면 그런 욕망이 생길 수 있죠. 일부 천사들은 실제 그런 과정을 통해 그런 행위를 하였죠.
가인도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를 발전시켜 그렇게 행하고 말았죠.
오늘날 인간은 어떻게 사람들을 빨리 많이 죽일까 하는 생각을 발전시켜 무기라는 것을 만드는 행동을 하고 계속 발전시켜 명중률이나 파과력이 더 우수한 무기들을 계속 개발하여 실전에서 사용하죠.
모든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창조주의 존재나 창조는 주어진 기본 조건이죠.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아서 창조론이나 진화론, 무신론이나 유신론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 거짓입니다. 창조론이나 유신론은 그 사악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론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죠. 애초에 종교라는 것은 이 기본적인 조건을 무시해서 생긴 악한 것이죠.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개념을 사용해서이죠. 그런데 기본적인 개념 자체가 애초에 입력된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죠. 아담에게 애초에 기본 개념들이 입력되어 있었죠, 그것으로 동물의 이름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창출해 내는 것이죠.
인간의 두뇌에 범주, 사유법칙, 문법 같은 것은 애초에 입력되어 있었다는 진리는 이미 확립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란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엄격하게 대가를 치르게 되죠. 관련 법칙은 행동의 결과를 관장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와 같은 생각은 진리 즉 법칙입니까? 그렇습니다. 창조주의 생각이기 때문이죠. 단 전달하는 저의 불완전한 개성은 반영되어 있죠. 어차피 또한 불완전한 한 언어인 한국어로 표현되어 있죠. 그러나 그렇다는 점들이 그 그 참됨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생각도 물론 떠오른 생각 중의 하나이죠. 제가 그걸 발전시켜 이처럼 쓰는 행위를 하기까지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은 창조주에 의해 예정된 대로, 프로그램된 바에 따라 저는 로버트로서 이렇게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도 그 보는 행동이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 보다가 중간에 그만두느냐 끝까지 보느냐 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이죠. 신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죠, 모른다고 해서 창조주의 언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인간들은 거짓의, 어둠의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기본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것이 법칙으로 증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없다든지 알 수 없는 것이라든지 하는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죠. 그런데 그 모른다는 생각은 옳다는 자가당착적인 생각에 빠진 것입니다. 모른다는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회의하는 것 자체는 회의할 필요가 없이 확실하다고 하는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긍정법칙을 거슬렀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가 전달하는 이상의 사상은 전혀 그러한 오류가 없습니다. 그 사상 자체에 적용시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좀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