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든지 무죄이든지

by 법칙전달자

사형이든지 무죄이든지


죄에 대한 규정이나 그것에 대한 형별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르고 지금도 수시로 바뀌죠. 터무니없지만 인간이 자의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점에 있어서도 인간은 심히 어리석고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만들어 타인을 공식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것이죠. 또 통제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자나 통제받는 자나 한 통속입니다. 지금은 법률들이 주로 머릿수에 의해 정해지죠. 인간들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우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법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것이죠. 지역에 따라 소나 돼지, 개 등을 법으로 먹지 못하게 하죠. 술도 그러하죠.


"법의 이름으로 괴롭힐 궁리를 하는 부패한 권좌"(시 94:20)라는 표현이 성서에 있죠. 많은 사람들은 실제 전혀 자연의 법을 침해하지 않았는데 인간의 자의적인 법에 의해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만 명의 사람도 그러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질상 실제적이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죄에 대한 판결은 두 가지입니다. 사형이든지 무죄입니다. 영생이든지 영원한 멸망이든지이죠. (마태 25:46)(롬 5:12,13)


사실 죄라는 것은 그것을 짓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사기나 폭행, 강도, 살인을 하지 못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그런데 인간의 의식은 심히 뒤틀려 있죠. 그래서 그런 행동들을 하고야 마는 것이죠, 국가적으로도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 궂은 행동들을 계획적으로 하고 있죠.


거의 모든 인간들은 직간접적으로 죄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연루의 압력은 너무 커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되죠. 모든 인간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죠.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조주의 인간 창조목적이 실패가 되죠. 그래서 인간들에게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마련을 하였습니다. 선언된 도덕법칙에 따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대속의 마련, 무죄로 만들어 주는 마련을 받아들이고 죄의 행로에서 벗아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흰 옷을 입은 상태가 되죠. 무죄의 상징인 흰 자갈을 받은 것이 됩니다. (계 7:9, 계 2:17)


세속의 법에 따라 받는 다양한 처벌들은 인간이 그러한 처벌과 상관없이 대부분 100살도 못살고 죽기 때문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죠. 일종의 私刑(lynch)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많죠. 전쟁에서 서로 죽이는 것도 그러합니다. 징역 몇 년을 줄 것이냐를 고심하는 사고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죠. 실제 인간이 겪는 결과들은 개인적으로 저지른 사법적이거나 도덕적인 범죄의 정도와 별 상관없죠.


인간은 전체적으로 이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살다가 때 되면 여러 방법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아무리 큰 부자나 권력자도 면할 수 없죠.


인간들이 법 없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기는 하죠. 그런데 사형되지 않는 세상이 그런 세상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수십만이 사형으로 죽어가는 세상은 결코 평화로운 세상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무신적 철학의 영향으로 죄의식 없이 그러한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죄에 동참하여 살죠. 그들은 결코 사형을 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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