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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이유

by 법칙전달자

죽는 이유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뚜렷이 식별할 수 있죠. 인간은 다양한 죽음을 겪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은 죄라는 것은 불변의 창조법칙입니다. (로마 6:23)


그런데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에 대하여는 이 법이 적용하지 않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신생아가 의식적으로 법을 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도 응석을 받아주면 쉽게 성질이 변하고 짜증을 잘 부린다는 점은 그들이 죄를 유전받았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합니다. 성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로마 3:23)


죽음은 뚜렷이 식별할 수 있고 죄의 행위나 죄의 욕망, 죄의 성향도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이라 할 수 있는 죄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기만 하다면요. 죄는 어원적으로 과녁에 빗나가거나 도달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있죠. 그래서 장조주의 의로운 도덕 표준과 합치하지 않은 모든 생각, 감정, 행동 등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관이나 태도 같은 것도요.


그런데 그 표준이란 간명한 것이죠. 처음에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아닐지언정 십계명 같은 것이 그것인데 그에는 창조주 이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과 동료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 그리고 탐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죠. 그리고 궁극적이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과 상충되는, 배치되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 모든 것이죠.


그러므로 죽음의 원인이 되는 죄라는 것도 결코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증오, 시기, 경멸과 같은 감정 자체가 죄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에게 미치는 피해를 개의치 않는 도모 자체도 죄인 것이죠. 행위로 구현되지 않아도요.


이처럼 의식이 법을 범하는 상태가 된다면 몸에 악영향이 미쳐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은 정신 신체 상관의 원리에 따라 잘 확립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거나 적절한 영양을 취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약해지고 병들어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의식상태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는 유전적으로 법을 범하려는 성향, 죄의 성향이 있으므로 억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억제는 자기의 자유로운 표현을 제어하는 내적 힘, 사상, 행위 또는 태도. 또한 자기주장에 상반되는 행동을 하기 꺼려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궤변적이고 세상적으로 현명하다는 사람들은 도덕적인 면에서 억제력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구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억제를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이 행동합니다. ‘놀자, 멋대로 놀자!’ 하는 것이 그들의 철학인 것이죠. 그러므로, 의복이나 용모로, 비열하고 음탕한 말투로, 온갖 형태의 폭력 행위로, 그들은 억제력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동물에게는 억제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천적인 충동 곧 본능을 따를 뿐입니다. 그처럼 인간과 다른 까닭은 무엇입니까? 왜 인간에게는 억제력이 필요합니까?


사람만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과 이성(理性)을 부여받아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성서는 알려 줍니다. 처음에 사람은 하느님의 법에 순종한다면 영원히 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불순종하면 생명을 빼앗기게 되어 있었습었다.—창세 1:26-28; 2:16, 17.


그러므로, 인간은 악행을 막는 억제력을 약화시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피해야 합니다. 음주나 음란물 등은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죠.


오늘날은 억제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실된 세상이고 다툼, 욕설, 태만 및 자신과 남에 대한 전반적인 불경(不敬) 등이 만연하죠. 이글 자체가 그런 세상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억제력이 진정으로 생기게 되는 유일한 원인은 창조주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분을 불쾌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 그분의 분노를 살까 하는 두려움도 그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이죠 —잠언 8:13. 마가 12:29-31; 누가 6:31.


오늘날 세상은 전반적으로 심각한 죄의 상태입니다. 물론 죄의식 자체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살 생각이 없는 짐승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기에 전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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