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심증은 틀릴 수 있죠. 그러나 논증된 것은 그 자체가 '틀림없음'입니다. 물증이 전혀 요구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죠. 2+3이 5임은 그것이 논증된 것인 이상 실제로 구슬 같은 것으로 확인해 볼 것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해보건, (공간적 대칭성) 100년 후에 해보건(시간적 대칭성), 돌아앉아서 해보건(방향적 대칭성) 구슬 두 개에 구슬 세 개를 더하면 다섯 개가 된다는 것은 극명하죠. 저도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고 이처럼 단언하는 것입니다.
논리는 물리에 앞선다는 것은 법칙이죠.(논리법칙)
감성(감각)으로 확인될 수 있어야만 학문적 진리가 될 수 있다고 하죠. 그것은 논리성의 확립이 미심쩍은 대상에 한한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야?"하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미 확립된 법칙에 대해 그렇게 묻는 것은 무지에 기인한 것이죠.
유심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유물론과 대립되는 유심론과는 전혀 다릅니다. 영적인 것이 항상 물질적인 것에 대해 우선이며 근원이라는 법칙이죠. 인간이 만든 모든 물질적인 것은 인간의 정신에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모든 자연물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죠. 그것이 시작되기 전의 영적인 것에서 나왔죠.
그래서 "자연계는 정신계의 투영, 물질계는 영계의 모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물론 자체는 정신적인 것이죠. 그런 물질은 없죠. 진화론과 무신론도 마찬가지죠. 무신론 자체는 영적인 것 즉 신적인 것입니다. 거짓신적인 것이죠. 거짓신에게서 나온 것이죠.
유물론은 실제로 있는 것은 오직 물질 뿐이라는 것이죠. 영적인 것은 다 허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생각 자체가 생각 일종의 관념인 것입니다. 물증에 대한 요구도 그 자체는 심리적인 것 즉 영적인 것이죠. 그 모든 것은 자가당착적인 것이죠.
산상수훈의 첫마디는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은 행복하다."입니다. 그런데 영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필요를 느끼죠.
물질주의자들은 많은 물질을 소유하여 일시적으로 쾌락을 누릴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이 뭔지는 모르죠.
물증이라는 것은 조작될 수 있고 감각되는 것은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논증은 그럴 여지가 없는 것이죠.
저는 이미 논증된 확립된 진리만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