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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관심을 확인하는 방법

by 법칙전달자

개인적 관심을 확인하는 방법


사람들은 무신론이나 진화론 등의 철학의 영향, 온갖 부조리한 현상, 종교인들의 위선, 고통의 만연 그밖에 개인적인 이유로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기 개인에게 관심을 가진 신은 없다고 생각하죠. 일방적으로 그렇게 단정하고 무신적으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문화적 물질적 시스템에서 결코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삶의 의의를 찾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그런 면에서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들에게 얻을 수도 없는 일이죠.


신이 존재한다면 이러저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 단정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죠. 만물에 반영되어 있는 그 신성을 희미하게라도 인식을 못하는 것도 그 원인입니다.


창조주가 만물을 운영하고 현상들에 대응하는 방식을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어디서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만물은 절대적으로 안정된 많은 법칙들에ᅟ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려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성들에서도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반려동물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이전 어느 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인간이 자력으로 알아내기가 불가능한 영적 도덕적 표준에 대해서는 창조주가 직접 알려주죠. 그러나 인간에게 하도록 한 것, 그것을 통해 의미를 느끼도록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습니다.


물질계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광합성 장치를 만들지 못하므로 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심어 재배하여 밥을 짓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죠. 쌀로 떡을 만들 수 있고 막걸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하죠. 위, 장 등에 효소를 공급하여 먹은 것을 소화시키는 과정은 조금도 인간이 한 것이 아니죠. 그러나 요리하여 입에서 씹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하는 것이죠. 구분이 명백합니다.


인간에게 과학 할 수 있는 지성(오성)이라는 지적 기능을 만든 것은 창조주이죠. 그것을 사용하여 법칙이나 원리, 성질을 발견하고 그걸 응용하여 기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일이죠. 그렇게 하는 가운데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어있죠.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신이 해주지는 않죠.


음악과 관련된 지적, 정서적 기능은 인간이 만들지 못하죠. 인간의 일은 악기를 만들고 그것을 연주하거나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하느님이 그 일을 하지는 않죠. 인간이 그런 일을 하는 가운데 보람을 느끼도록 되어 있죠.


일단 입안에 음식을 넣고 "하느님 당신이 제 이와 혀를 움직여 음식이 분해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오. 응답이 되나. 물론 그 일은 자신이 할 수 있으므로 그런 이상한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전혀 없죠. 그런데 그런 식의 기도가 응답이 안된다고 창조주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실제로는 없겠지만 비유적으로는 대부분이 그 정도로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씹어서 넘기면 배속에서의 일은 그분이 한다고 할 수 있죠..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었으면 뱃속에서의 일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위나 장이 맛을 느끼는 것도 아니니까요.


창조주는 창조섭리와 일치하게 일을 하며 만물을 운영하죠.


창조주는 섭리적으로 인간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섭리와 일치하게 그것을 나타냅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찾는 개개인들에게 바로 시기적절하게 사람을 방문하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꼭 필요한 교훈도 그런 통로를 통해 전달되죠. 예수는 사람 개개인을 일일이 방문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은 창조주가 개인적으로 나타내는 관심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분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였죠. 아마 개인적으로 진정으로 기도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 창조주의 개인적 관심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한탄스러운 부조리한 현상들의 원인을 알고자 하여 기도한다면 전혀 예외 없이 그런 방법으로 창조주의 개인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제넘게도 그 얄팍한 생각에 의존하여 독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옳다고 여기고 방종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접근해 와도 거절하는 것이죠 예수 당시의 사람들처럼요.


시편 14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여호와는 없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타락한 행동을 하고 가증한 행위를 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사람의 아들들을 내려다보신다, 통찰력 있는 자가 있는지, 여호와를 찾는 자가 있는지 보시려고. 모두 다 빗나가고 하나같이 타락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행악자들 중에는 깨닫는 자가 아무도 없단 말인가?


야고보서 4장 8절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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