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인간의 철학적 사유로는 결코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없거나 부정적인 결론에 이를 뿐이죠. 그렇다는 점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으로 확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인간은 사고력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에는 사고력을 지키라는 권고와 사고력이 지켜준다는 원칙을 말해주고 있죠.
잠 3:21 실용적인 지혜와 사고력을 잘 지켜라.
잠 2:11 사고력이 너를 지켜 주고 분별력이 너를 보호하여
오늘날은 사변적인, 현학적인, 철학적인, 신비주의적인 사상들이 오히려 난무하고 있습니다.
불교나 도교 등등 각 종교의 교리나 경전의 문구, 고대 성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어록에 있는 어떤 선문답 같은 말들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면서 현대적인 화법으로 어필하려 하는 것이죠. 양자역학이나 뇌과학 관련 각종 과학적 가설들을 활용하기도 하고 송과체, 아스트랄체 등 각종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전생이나 윤회, 사후세계, 유체이탈을 등 여러 개념들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뉴에이지 사상들도 난립하고 있죠.
그래도 이런 사상들은 구체적인 뭔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한편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하던 그것은 그냥 상상 혹은 사고유희에 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을 표현한 말들은 언어유희 혹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죠.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유희라고 하는 그 생각은 사고유희가 아니며 그것을 표현한 말들은 언어유희가 아닌 것입니까? 대표적인 자가당착이고 그것은 단지 부정적인 내용의 언어유희일뿐인 것이죠. 그렇다는 주장은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순을 범하는 것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사고력을 지킨다는 의식이 없죠. 이런 철학, 저런 이론 등을 탐색하면서 그 영향에 침투를 받게 되는 것이죠.
교묘한 체계들을 가진 철학들은 결국 인간의 정신을, 영혼을 오염시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인간에게 눈과 귀는 얼마나 소중합니까?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때 행복하죠. 진리인 말씀을 듣거나 보는 것도 형언할 수 없는 영적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뇌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인두세, 토지세 등 여러 세가 있었죠. 나라가 군대를 육성하여 너희 머리를 지켜 주니 당연히 세금을 내라는 것이고 오늘날도 각종 명분의 세금들이 있고 성서에도 이 세금들은 당연히 내라고 하는 것입니다.(롬 13:6,7)
그런데 인간은 눈이나 귀 그리고 뇌를 사용하며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에게 한 푼이라도 눈세나 귀세 뇌세 같은 것을 냅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을 그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올바로 사용하여 행복하게 되어 감사나 찬양을 드리면 그것이 세금을 내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사고력을 지키는 것입니다. 분별력을 사용하여 거짓들을 배척할 수 있어야죠.
그런 방식으로 세금을 냄으로써 생명을 영원히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