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요구
육체는 계속 요구하죠. 먹여줘, 씻겨줘, 재워줘, 따뜻하게 해줘. 치료해 줘 등등. 마음도 그러하죠. 누가 보고 싶어. 바다에 가고 싶어. 어떤 음악이 듣고 싶어 등등.
그러한 요구들은 정신에서 인지하죠. 우리가 인지 못하게 이루어지는 요구들은 뇌에서 자동으로 처리합니다. 장에서 음식물을 분해하는데 필요한 효소를 공급해 달라는 요구 같은 것들이죠. 근육에서도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고 요구할 수 있죠.
신체 전체이서 이루어지는 신비스러운 장치는 알면 알수록 감탄스러운데 하나의 세포만으로도 경이 그 자체이죠. 가만히 있어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그러한 작용 때문에 기본 에너지가 소모되죠. 1,500칼로리 정도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에게는 의식이 있어서 그 의식에서 인지되는 요구들은 의식적으로 처리를 해야죠. 아무리 더러워도 씻지 않으면 자동으로 떼가 없어지지 않는데 인도에서는 수십 년간 전혀 씻지 않은 사람의 사례도 있죠. 먹여 달라고 하는 요구에 상당기간 응하지 않으면 아사하게 되죠.
인간의 핵심적인 자아는 몸과 마음이라는 국민들에 대한 통치자이죠. 유심히 살피면 아우성을 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미묘 섬세한 것들도 많아서 자중심을 유지할 수 있게 좀 해줘 등 매우 다양하죠. 급한 성미나 이기심으로 인한 요구 같은 것들도 분별할 필요가 있고요.
예전의 어떤 왕들은 백성들의 실상을 살피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민정을 순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잘 인지가 안 되는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요구들도 알아내기 위해 비유적으로 그러한 순찰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죠.
샅샅이 순찰하여 명세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에 대한 통치자로서 자격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력으로는 한계가 있죠.
호된 비판을 받는 통치자들이 많이 있죠. 불행이 엄습했다고 느끼는 위기상황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고 호된 비난을 극복하고 어떻게 통치자로서 궁극의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까?
실제로 국가의 통치자이기도 한 다윗이 영감 받아 기록한 말에서 그 답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라고 시편 필자 ‘다윗’은 말했습니다. (시 18:2) 그의 확신은 단순히 자기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의 친밀한 우정에 기인했습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창조주와 그러한 관계를 누릴 수 있으며 그것에 기반을 두어 통치자로서의 역할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