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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by 법칙전달자

그리스도교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고 해서 심지어 99%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가 정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도 긍정적인 측면이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측면에서 사소한 하나라도 부정적이면 그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반면에 그 사소한 하나가 기준에 부합하다면 즉 승인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비본질적인 요소가 부실해 보인다 해도 존재자치가 있다는 것도 같은 원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나 그의 제자들의 영감 받은 필서들은 약 2,000년 전에 기록된 것이나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엊그제 기록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사실 본질상 그 당시보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영된 영속성 있고 보편적인 가치들은 오늘날에 있어서의 현실성과 실용성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종교나 정치는 그 본질상 법칙을 거스르는 것으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당연히 거짓에 기초해 있으며 해로운 것입니다. 그것의 순기능 혹은 긍정적인 가치가 아무리 두드러져 보인다 해도 그 점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러한 종교의 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이란 그리스도의 한자식 표기로서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의미하고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아에 해당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 혹은 '임명받은 자'를 의미하고 그 임명이란 왕 즉 통치자와 제사장으로의 임명이죠. 퉁치와 숭배에 있어서의 지도자라는 의미이죠. 예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통하여 인류에 대한 구원자가 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으며 그를 통치자로 따르는 종교임을 의미하죠.


종교의 의미를 숭배라고 하면 예수는 참 숭배를 확립하였으므로 유일한 참종교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종교의 일반적인 의미는 그렇지 않으므로 오히려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수는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통치는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그분의 말씀인 진리는 역시 종교적인 것이 될 수 없죠. 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분의 행적 또한 전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라는 명칭 자체에서 그것이 거짓임을 확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도 그렇고 그 앞에 예수를 의미하는 그리스도를 갖다 붙인 것도 극단적으로 사악한 모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 교리나 숭배방식이나 역사상의 행적이나 그 신도들의 사생활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성서나 예수의 가르침이나 본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그 교리는 성서에서 배척하는 철학 그것도 그리스 철학으로 되어 있는데 역사책에서도 교부철학이나 스콜라철학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교리면에서 예수가 누구인지와 관련된 하나만 살펴보면 기독교에서 철학적으로 고안해 낸 신이 삼위일체 신인데 그중 한 위가 예수라는 것이죠. 성자 하느님 혹은 아들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에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일반신도들이 성서를 지니고 있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를 알 길도 없었죠. 그 세 신은 능력이나 영원성이나 본질이나 지식이 대등하다는 것인데 그런 개념은 성서에 없습니다.


지금은 성서를 금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의적인 오역이나 비논리적인 억지해석으로 그 교리를 정당화하려 하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하느님을 나타내는 엘로힘이 복수이기 때문에 셋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죠. 복수이면 셋을 의미합니까? 너무나 터무니없죠. 또 마태 28장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말이 나오는데 셋이 나열되어 있으면 그것이 동등한 것입니까? 어떤 공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장관의 서명이 있으면 이 셋의 권위가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나와 나의 아내와 나의 전 재산을 걸겠다고 하면 이 셋이 지위나 성격이 같은 것임을 의미합니까? 지니치게 억지스러운 주장이죠.


요한복 음 1:1절에 하느님을 나타내는 앞의 데오스에 정관사가 있는 표현으로 뒤의 데오스는 정관사 없이 사용한 구절이 있습니다. 정관사가 없을 경우 일반명사나 형용사로 사용되기 때문에 여러 번역에서는 하나의 신이었다 혹은 신성이었다와 같이 번역하며 그것이 앞뒤문맥이나 문법에 맞는 번역이죠. 동일한 존재를 함께 있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고의적인 오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그분은 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당연히 예수는 인간이 되기 이전 하늘에 있을 때는 신적인 존재였죠.


여호와는 예수의 아버지이자 하느님이고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죠. 예수는 숭배의 대상은 물론 아닐 뿐 아니라 기도의 대상도 아니죠. 이점은 예수 자신이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마태 4:10. 6:6)


이점만 살펴본다 하더라도 그들의 핵심교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전혀 아니지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라는 명칭 자체가 얼마나 거짓되며 가증스럽고 모욕적입니까? 기독교를 필두로 모든 종교는 정치가 멸망되기 전에 먼저 멸망될 것입니다. 너무나 거짓되고 너무나 악하게 행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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