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산책
매일 숲으로 산책을 하는 경우 다른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로가 특별히 흡족하면 아예 고정적으로 망설이지 않고 그 경로를 이용합니다. 매일 거닐어도 싫증 나지 않으며 매일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연인과 데이트하듯이 그 시간들을 즐기게 되죠. 경로에 있는 곳곳을 흥분과 설렘으로 감상하면서 도취의 순간들을 누리는 것이죠.
그 통로는 제가 발견하기 전에 이미 있었으며 저는 난생처음 어느 순간에 그 코스를 알게 된 것인데 그런 식으로 산책로가 개척된 시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수십 년 전에는 전혀 산책코스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 모르죠. 그 코스에 있는 어떤 나무들은 수백 년 되었을 것이며 그 산 자체는 수천 년 되었을 수 있고 한반도의 형성도 그러하죠. 지구 자체는 수십억 년 되었다고 하는데요.
숲 산책은 신선한 공기와 약수, 유산소 운동 효과 등등 신체에도 큰 유익을 줍니다. 요즘은 멧돼지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요.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순간들이죠.
산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꼭 직접적으로 도보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 산책이 있죠. 과거의 어떤 시대를 그렇게 할 수 있고 미래의 어떤 곳을 산책할 수도 있죠. 가만히 앉아 생생하게 영상을 펼치면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여 살제로 산책한 것처럼 느낄 수 있죠. 다른 항성계의 행성을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산책이 있죠. 성서의 같은 부분을 매일 반복해서 읽어도 늘 새롭고 또 읽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출판물이나 강의도 그럴수 있습니다.
매일 가는 동일한 코스의 산책에서 매번 새로운 낭만과 영감, 힘을 얻듯이 성서인 경우 동일한 것을 매일 읽어도 영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의 같은 코스의 숲 산책이고 또 겨울의, 다른 계절에 비하면 화려함이란 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는 우중충하고 부석부석한 면이 있어도 그래도 매번 곳곳의 단편들은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구절구절에서 아! 이런 것이 있었네! 하고 새로운 발견들을 매번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음악의 세계를 산책하게 되고요.
영적 산책이라면 이 브런치도 하나의 코스가 될 수 있죠. 지금 이 글을 보는 분은 그 산책로에서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한 목표는 다른 사람이 들려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죠. 어떤 하나의 행성을 주고 그것을 개척하라고 하면 어떤 세계로 그곳을 꾸밀 것입니까?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도 많은 산들이 있고 그 숲들에는 무수한 산책코스들이 있습니다. 강과 호수 바다들도 있죠. 세계라면 말할 나위가 없죠. 우주는 더 그렇고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정신세계에 개척해 놓은 그런 영적 산책로라는 것도 있고 사람의 수도 무한히 증가한다고 할 때 우리에게는 영원이라는 시간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산책하는 것만으로도요.
현재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예정된 무수한 산책코스들이 있죠. 영육간에 인간이 즐기고 유익을 얻을 수 있게요. 영원히 살면서요.
결코 산책로라고 할 수 없는 시끄럽고 먼지 나고, 탁한 인공물들이 삑빽한 곳이나 인공구조물과 기기들속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들은 참으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