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의 남용
인간은 사랑, 지혜, 공의, 능력과 관련하여 배우지 않죠. 그러므로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하죠. 그와 관련된 어휘를 사용하긴 하는데 예를 들면 참 지혜가 무엇인지 인간이 배양해야 할 본연의 능력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더욱더 그러하죠.
공의와 관련해서도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뼛속까지 남용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공의란 정죄와 그 집행이 관련되어 있죠. 원칙적으로 인간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죄, 단죄, 심판은 물론이고 비평이나 판단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이죠. (마태 7:1)
그런데 사람들은 상대를 정죄하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하죠. 단지 비난이나 비평을 훨씬 넘어서 그러하죠.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그러합니다. 창조주는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을 일시적으로 인간 권위자들에게 부여하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런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죠. (로마서 13:4) 그런데 그런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상대의 언행에 대해 폭언이나 저주 모독에 가까운 정도의 언사도 쉽게 볼 수 있죠. 내용이나 동기, 방법 자체가 몹시 뒤틀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를 심각하게 남용하여 공의의 법칙을 범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측면은 공의가 신속히 집행되지 않는 점을 오용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대한 선고가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악을 행하는 데 더 대담해진다(전 8:11)
우선 자연의 법칙은 인간이 그릇된 행동을 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바로 그것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왕벌이 쫓아다니면서 인간이 잘못을 할 때마다, 거짓말을 하거나 욕을 하거나 할 때마다 바로 그를 쏘아 혹을 만든다면 거리에는 울퉁불퉁한 사람들이 활보하게 되겠죠. 뇌물을 받는 순간이나 성매매를 하는 순간 등등 오히려 편안하게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러나도 사법적으로 최종적으로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지로 추정한다는 것이죠. 세속법정에서 몇 년씩 질질 끄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인간은 쉽게 동료인간의 언행에 대해 비평을 하고 단죄를 하며 공의의 법칙을 이기며 벌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쉽게 불법한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의의 남용은 개인과 사회에 뿌리 깊게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는 행복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용하는 사람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죠. 조만간 그런 사람들을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