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다
인간은 물속에서 손을 휘저어 수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공간에서 그렇게 하여 새처럼 나는 것은 불가능하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가능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수영할 수 없다고 할 때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죠.
사람은 방아쇠를 당기는 등의 방법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물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혀로 욕을 하는 언어적 구사력도 지니고 있죠. 그러나 그런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러한 것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수인 경우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고 누가 왼뺨을 때린다면 오른뺨을 대라고도 했죠. 욕을 하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죄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한 분이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죠.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이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인격을 지니는 것이 가능할까요? 선을 사랑하고 악을 증오하는 인격을 지닌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시 97:10) 어떤 행동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이 생기고 유혹이 되는 상황이 생기긴 하는데 그런 행동을 하면 비난을 받거나 벌을 받게 된다든지 생각해 보면 타인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어서 억제를 하는 것이라면 그 행위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사람이 아니지요.
미워하는 사람은 그런 충동 자체가 생기지 않고 역겨운 것으로 느끼죠. 미운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 피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근처에 가지도 않는 것입니다. 물에 가지도 않는다면 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악한 것과 관련하여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눈을 깜빡이는 정도도 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분리되려면 죽으면 되는 것이죠. 시체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하죠.
에베소서 2장 1~5입니다.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 죽어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 제도에 따라, 공기의 권세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는 한때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서 육체와 우리 생각의 뜻대로 행동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큰 사랑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우리가 범죄 가운데 죽어 있는데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과분한 친절에 의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하죠. 욕체의 그릇된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죽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골로새서 3장 5~10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부도덕, 더러움, 무절제한 성욕, 해로운 욕망, 탐욕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여러분도 이전의 생활 방식을 따르던 때에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 곧 격분, 분노, 악, 모욕적인 말,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음탕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옛 인간성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성을 입으십시오. 새 인간성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정확한 지식을 통해 새로워져 갑니다,
죽이라고 하는 것이죠. 탐하는 지체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가능해지죠.
'할 수 없지 뭐'라는 표현이 있죠. 그것은 '하고는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니 체념하는 것이 낫지' 하는 의미이죠. 이것은 죽이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영적 성장 가운데 반드시 도달해야 할 하나의 지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충동이 생기지 않고 유혹이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공자인 경우도 성장해 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30세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률을 준수함
40세 불혹(不惑) 부도덕한 것으로 더 이상 유혹을 받지 않음
50세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달음
60세 이순(耳順) 귀가 순해져 모든 진리의 말을 이해하게 됨
70세 고희(古稀) 뜻대로 행해도 자연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음
악한 충동 자체가 생기지 않고 선에 대한 의욕뿐이므로 그에 따른 어떤 행동을 해도 창조주를 기쁘게 하는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 풍요와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