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바꿀 수 있는 현실
여기서 생각이란 구체적인 사상을 의미할 수도 있고 총체적인 의식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사람의 의식이란 현실에 영향을 받아 틀 잡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욕을 들으면 화가 나고 맞으면 적개심이 생기는 식이죠.
근래 들어 인간의식에 대한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많은 관련 저서들과 강연, 캠페인들이 있어왔죠. 특히 뇌과학이나 양자역학과도 연계되어 유사과학이라는 비평을 받기도 합니다.
인간이 그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동적으로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응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주장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그로 인해 현실을 바꾼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주로 뉴에이지 계열에서 그런 주장을 합니다.
물론 나름의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리가 신빙성 있는 측면이 있다 해도 그걸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눈살을 찌부리게 합니다. 그들은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인데 탐심 자체가 법칙을 범하는 것이죠.
그런데 끌어당김의 법칙을 적용하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면서 원하는 돈의 액수, 차종 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하여 명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뉴에이지류의 기능성 음악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 음악을 들으면 황금을 굴러들어 온다는 식으로 홍보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특정 방법으로 명상을 하면 양자장이 그와 일치하게 작용을 하고 우주의 기운이 도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이처럼 탐심과 이기심, 에고를 부추기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수는 있을지언정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생각은 현실이나 상황을 어느 정도나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현실을 정의하기에 따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든 공중부양이나 가던 차를 멈추게 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초자연적 현상을 인간의 명상 그 자체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죠.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래드라는 장기수가 매년 가석방심사를 받는데 심사관들에게 호의를 얻으려고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짜 낸 말을 할 때마다 기각되었죠. 그런데 한 번은 그런 면에서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조금도 기대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진실을 가식 없이 그대로 말하게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는 석방되었죠. 의식을 바꾼 것이 현실을 변화시킨 것이죠.
상대가 자신을 조롱하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해도 그에 따른 부정적,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고 개의치 않거나 오히려 그들에 친절을 나타내는 경우 그들의 그러한 공격적 행동을 수그러지게 할 수 있죠. 주변을 평화로운 상태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죠. 내가 더 이상 빌런이 되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감동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적개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동정심을 갖는 의식 상태가 현실을 그와 같이 호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긍정적이고 평화롭고 희망적인 의식상태는 신체적 현실에도 영향을 미쳐 무병의 상태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정신 상관의 원리에 따른 것이죠.
성서에는 베드로가 긍정적인 의식을 가졌을 때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그의 현실이 되었는데 그의 의식에 두려움과 불신이 깃들자 물에 빠지는 것이 그의 현실이 되었죠.
인간의 아름답고 의롭고 선하고 참된 생각들은 또한 그런 감정들은 표정이나 행동에 나타나 주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어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그의 현실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어떤 확고한 생각들 즉 신념들은 양자장이나 우주의 기운의 호응을 얻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창조주의 호의를 얻어 그의 현실을 문자적인 낙원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 정도는 기본이며 행복에 찬 영원한 생명이 그의 현실이 되게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