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판단력 비판

by 법칙전달자

판단력 비판


눈으로 덮인 숲의 아름다움은 탄복할 만합니다. 한눈에 넋을 읽고 반해버리는 그런 아름다움이죠. 지붕 위에 단조롭게 쌓인 눈과 가지 위에 얹혀져 있는 눈의 아름다음은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조화롭게 늘어져 있는 나무들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 눈송이들로 우아하게 장식된 나무들은 미의 극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칸트가 미에 대해 논하면서 왜 판단력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비판이라고 한 것일까요?


전도서 3장 11절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 또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시 27:4)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45:20)


하느님의 아름다움이란 그분 자신을 직접 볼 수 없으니 그분이 만드신 만물에 반영된 아름다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때에 따른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그것을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면에서 더 경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만물에 내재된 절대적 아름다움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칸트는 진정한 미는 이성이념이 발동할 때 느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각에만 의존한 것은 진정한 미적 판단이 아니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정확한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은 본능을 이성의 힘으로 다룰 수 있는 의지가 있는데 자유로운 존재는 본능적이고 야생에 충실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이성을 갖춘 상태가 자유로운 상태이며 그러한 자유로운 상태일 때 미적인 활동이나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며 인간은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어렵죠.


이성의 원래 기능은 법칙을 알고 적용하는 것이죠. 그 법칙은 인간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선언된 것, 규정된 것이죠. 그분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고 연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에 따라 행하는 능력이 의지이죠. 위의 아름다움을 논한 솔로몬이나 다윗이나 이사야는 모두 그런 면에서 본이 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눈이나 감성기능 자체는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지만 이성을 이와 같은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과 그에 따른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 쾌락을 추구하면서 동물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사람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돈과 쾌락,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죠.


칸트가 정의한 사람이 아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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