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저지른 사람은 곤경에 처한 사람이 되죠. 거액의 도박빚을 졌다든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든지 주먹을 잘못 휘둘렀다든지 정치적 과오를 범했다든지 등등 어떤 상황이나 의식 상태로 인해 형사적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민사상이 과오를 범한 사람들이 많죠. 치밀한 계획에 의한 사기적인 행위일 수 있고 우발적 충동이나 습관성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은 정신을 차려 자신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의 의식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뼈저리게 후회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다 털어 보상을 한다든지 반복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할 수 있죠.
인간이 심각한 죄의식 없이 죄를 저지르고 결국 곤경에 처하고 몸으로 때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면으로 그 후과는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죠.
최고통치자나 재벌들도 그러하여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가 사면 등으로 겨우 풀려나게 되는 정도이죠. 그러고 나서는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는 경우가 많죠.
신체적 병질의 문제는 의사들이 해결한다지만 의사들 자신도 결국 질병으로 급사한다거나 시달리다가 보통 사람들의 평균수명정도를 살다가 죽게 되죠.
문제를 해결하고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여러모로 모색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죠. 인간의 머리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슴으로,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는 문제라면 혹시 모를까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어떤 철학적인 관점으로는 인간은 누구나 문제를 저지른 사람과 같은 상황이라라고 합니다. 한계상황, 극한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죠. 결국 죽음만이 문제에서 벗어나는 궁극적 방법이 되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어서 자신들이나 그 후손들을 죽게 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까요? 없었죠. 죽어서 그 죄과를 치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입니다.
쾌도난마라는 것이 있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죽이는 것이 근원적이고 손쉬운 해결책이라 하여 수백만을 직무의 일환인 것처럼 그렇게 한 경우들도 있죠.
인간 자체로는 이런 점들과 관련하여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식으로 살다 죽으라고 태어난 것은 아니죠. 그렇기만 하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부조리이고 창조의 실패이죠.
인간에게서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해결책은 예수의 대속과 천년통치이죠. 인간은 그 마련에 순응하여 참 희망 가운데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두 부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