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설들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이 있습니다. 오성적인 호기심이죠. 열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처음에는 열을 전달하는 입자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것을 가칭 열소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런 것이 아님이 밝혀졌어도 그런 가정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열소가설은 폐기된 것이죠.
사람들은 당연히 공간이나 시간이 연속적이고 물질도 끊임없이 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이상적인 생각들은 현실에서 모순에 봉착하였습니다. 수학적으로 그렇게 무한히 잘게 나누어질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무한한 에너지가 발산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물체가 온도가 높으면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그 온도에 따른 에너지의 양이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수의 배수로만 관측이 된다는 것이죠. 소위 플랑크 상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towardtruth/57GZ/4
이를 발견한 플랑크는 노벨상을 받았고 아인슈타인도 그 플랑크 상수를 이용한 광전효과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하였죠.
결국은 물질뿐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도 어떤 단위의 비연속체라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전자의 궤도도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궤도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다른 궤도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죠. 시간도 단위시간으로 존재하였다가 멈추었다가 즉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식이라는 것인데 시간이 멈추면 물질도 소멸하게 되죠. 시간이 멈추었다가 생겼다가 하는 것이므로 물질도 그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현상 역시 양자요동의 한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것이죠.
열소처럼 있을 법한 것은 없다고 하고 상식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죠.
빛은 일종의 파장이므로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에테르라고 가정하였죠.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 에테르라는 것은 없음이 증명되었다고 하죠.
그 먼 곳에 있는 태양이 지구에까지 중력을 미치려면 그렇게 하는 뭔가가 있어야 된다고 가정할 수 있죠. 그렇게 하는 입자를 중력자라고 가정한 것이죠. 정지 질량이 0인 입자이죠. 중력이 아무리 강한 행성 위에 저울을 올려놓아도 눈금은 0이 되는데 광자처럼 질량이 없기 때문이죠. 입자는 파동과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죠. 광자에 대해서는 광파이듯이 중력자에 대해서는 중력파인 것이죠. 처음에는 그러한 존재를 가정한 것인데 중력파는 관측이 되었다고 하죠. 블랙홀의 존재도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라 처음에는 가정한 것인데 결국은 관측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학자들은 물질이 질량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힉스라는 과학자는 힉스장 혹은 힉스입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 힉스장이라는 바다에서 움직이는 물질이 힉스입자의 저항을 많이 받으면 질량이 큰 것이고 적게 받으면 질량이 적은 것이라고 가정했죠. 그런데 힉스입자가 발견되어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죠. 우주는 힉스장으로도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것이죠.
인간은 오성(지성)의 영역에서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을 가질 수 있고 그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검증을 하여 그것이 폐기되든지 입증되든지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가운데 지식의 증가가 있고 그것은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영적 영역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서를 배척하고 나름의 철학적인 신관념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공상적인 신을 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신이라 생각했죠. 그런 신관념을 가설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불순함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러한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면 그와 상충하는 부조리한 현상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며 기독교에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신 혹은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다고 전제하고 그럼 인간은 어떻게 생긴 것이지 하고 의심을 갖게 된 것이죠. 그리고 나온 것이 진화가설입니다. 우주에는 신적인 존재, 인간 이외의 지성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으며 만물은 그리고 인간도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 그렇게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죠.
온갖 철학적인, 신학적인 즉 이성적인,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인간이 어떤 가설을 세울 수 있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중력이 이미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은 단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뿐인 것이죠. 가설을 세우거나 설이나 이론을 만들어내는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언어처럼요 언어에 대해 가설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언어는 없는 것이다"와 같은 가설요. 가설은 언어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죠. 언어의 존재를 부정하고서 뭔가 이론을 만들거나 주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그런 터무니없는 가설적 성격의 것으로 되어 있고 행동을 매우 사악하게 해왔으므로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무신론이나 진화론 같은 것을 고안해낸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제가 잘못되었죠. 창조주에 말씀이 아니라 기독교 교리 같은 것을 창조주의 말씀일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하에서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철학적 사상이나 종교교리는 이런 면에서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것에서 나온 이념이나 무슨 주의와 같은 모든 것들도요. 그런 것들로 정치를 하는 세상이 얼마나 개판인지, 인간들이 얼마나 어그러져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개돼지 정도가 아니라 악취 나는 쓰레기나 배설물처럼 된 것이죠. 감정적으로 격한 표현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죠. 오죽했으면 홍수로 싹쓸이를 하겠습니까? 홍수로는 아니지만 조만간 그와 같은 멸망이 임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