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것도 섬김을 받는 것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일리 있습니다. 혼자만의 인간의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힘듭니다. 사회성, 사회적 욕구라는 기본적인 본성이 있어서 그것이 충족되어야만 하죠.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고 그중에서 중요한 것이 사회적 행복이죠. 사람 사이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요. 그 행복이 얻어지는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김으로써 그러한 행복이 얻어질 수 있죠.
섬기는 것이 행복하다면 섬기는 받는 것도 행복합니다. 삼국지에 제갈량은 유비를 섬겼다고 할 수 있고 유비는 제갈량의 섬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서로 누렸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이 어떤 행정적인 일을 할 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죠. 가장 큰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간주되는 사람이 어떤 책임을 맡게 되면 그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죠.
예수도 자신보다 자신의 제자들이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요한 14:12) 제자들은 예수를 받드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관계에서 행복을 누렸다고 할 수 있죠. 예수는 왕으로서 세상에 온 것이고 그분의 제자에 대해서는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실상은 제자들이 그분을 보좌하기는 하였지만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자세는 섬기는 것이었죠. 제자들이 아직 섬기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죠. 그분이 부활하고 나서 얼마 후 성령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부어지고 나중에 제자가 된 사도바울에게도 그렇게 되어 그때부터 예수의 참모로서 제대로 그분의 일을 보좌할 수 있었죠.
사람들은 서로 섬기며 섬김을 받으면서 사회적 행복을 만끽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왕이면서 동시에 종인 것이죠. 부부간에는 보통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한 진정한 섬김에서 여인들은 행복을 느끼도록 되어 있죠. 섬긴다는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죠. 자녀를 출산한 경우 그들이 독립하여 결혼하여 서로를 섬기게 될 때까지는 부모가 자녀를 섬기며 돌본다고 할 수 있고 자녀는 부모에 대해 자신이 섬기는 사람처럼 존중하면서 공경하면서 대하도록 되어 있죠.
이러한 섬김은 모든 동료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인간은 주변에 대해 공동창조자로서 개척하는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로 섬기는 자세로 일함으로써 그러한 목적은 온전히 달성할 수 있죠. 섬기는 것도 즐겁고 사랑하는 동료에게 섬김을 받는 것도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음껏 그의 크고 깊은 사랑이 녹아있는 애정 표현을 즐길 수 있죠. 역사 이래 어떤 왕도 누려 보지 못했을 사람 사이의 참 행복을 누리는 관계가 모든 동료인간사이의 본연의 관계, 공동창조주사이의 관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