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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빠를 다닌다면 넌 이해하겠니?
넌 룸싸롱에 미쳐 살면서 난 안되는거니?
by
blandina
Dec 1. 2024
나는 더욱 조씨 아저씨를 이해하고 잘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자라며 부모 모임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내 인간관계를 활용해 조씨 아저씨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애썼다.
엄마들과 친해지면 그 남편들과의 모임을 주선해,
조씨 아저씨도 그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했다.
하지만 조씨 아저씨는 마치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매우 독단적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그가 이민 사회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상위층에 속했다는 점이었다.
돈이 있으면 어디서든 대우받는 법이니,
그는 자신의 성격이나 태도로 인한 문제를 크게 체감하지 않았다.
그쯤에 조씨 아저씨는 골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남미 아저씨들의 특징 그리고 코스라고 말해두자.
골프장에서 술을 마시며 내기 골프를 치고 끝나면 저녁으로 밥과 술을 마시고
2차로 룸빵을 가는게 당연히 누구도 묻지 않는 수순이였다.
남자는 돈을 벌면 딴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가 딴생각을 하기전에 이미 술집에 종사하시는 그분들은 돈이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 달려든다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을 질책하고 싶진 않다 그분들도 그게 본인들의 직업이니까.
거의 1년쯤 골프를 치고 룸빵을 드나들때쯤 꼬리를 잡히고 만것이다.
난 조씨 아저씨의 핸드폰을 한번도 훔쳐 보거나 보여 달라고 한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
그것도 잠금장치도 풀어져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여자의 메세지를….
그날 사단이 났다.
왜냐면 난 결혼하고 나서 아니 결혼 전부터 이미 얘기를 했다.
당신이 밖에 나가서 어떤일을 하던 난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골프를 치던 룸빵을 가던 비지니스 관계를 핑계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나는 당신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그래서 조씨 아저씨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거의 1년 이란 시간을 룸빵을 드나들었던것 같다.
1년이란 시간동안 거길 가서 그렇게 돈을 쓰니 누가 가만 두겠는가?
결국 여자가 붙었던것이다.
조씨 아저씨도 즐겼을 것이고 그때쯤 그 좁은 이민 바닥에 아가씨들을 대리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돌았어도 나는 그러려니 했다.
왜냐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 대학 갈때까지는 이혼을 안 하고 어떻게든 버티며
아이들 그리고 우리 부모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거 하나였다.
조씨 아저씨를 사랑해서도 내가 누리는 그 좋은차 좋은집 돈 그런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상처 받을 내 아이들과 실망하실 우리 부모님만을 위해서 참았던 것이다.
결국 조씨 아저씨는 그렇게 핸폰의 그녀와의 사이를 나에게 걸리게 된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나와 이 여자 누구냐고 묻자 룸빵 아가씨라고 당당하게 얘기를 한다.
그래서 만나니 좋드냐고 묻자 조씨 아저씨 하는말…
그 여자는 너처럼 잔소리도 안하고 듣기 좋은말만 해줘서 만나면 좋단다.
야 이 미친놈아!!!!!!!!!!!
나도 그년한테 돈 쓰는것처럼 돈쓰면
나도 그렇게 듣기 좋은말만 해줄수 있어!!!!
누구는 안 그러고 싶어서 너한테 잔소리 따위를 하며 살겠냐!!!
그리고
내 잔소리는 다 니 부모가 잘 못하고
니가 잘 못하는 걸 말 하는거지 세상에 부부로 살면서 잔소리 안하고 자질구레하고
부부싸움 안하고 사는 인간들이 몇이나 되겠냐 이 똥멍충아!!!
조씨 아저씨와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몸싸움에서 격투기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조씨 아저씨의 밀침에 옷장 열쇠에 걸려 넘어지면서
왼쪽 눈썹이 찢어지면서 피줄기가 폭포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돌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고
그때 잠깐 집에서 같이 살고 있던 친정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나의 피가 흐르는 얼굴을 보고 얼른 병원에 가자고 애기 짐 가방을 챙겼다.
결국 나는 그날 내가 운전해서 응급실에 가서 이마를 7바늘을 꼬매고 왔는데
그 난리가 난 집은 내가 나갈때 그대로 였다.
조씨 아저씨는 내가 와서 치우라고 보란듯이 놔둔것이였다.
나는 꼬맨 머리가 두통이 심해졌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눈에서 흘러 내리는
그것들을 닦으면 다 부서진 집기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다음날 아이들 학교 갈 가방준비물과 간식을 챙기며 주방에 주저 앉아 울었다.
그러면서 다짐을 했다.
아 이제는 진짜 이혼이란걸 해야 겠구나.
저런 사람과는 더이상 살아가는게 삶이라고 말할수 없겠구나….
나는 그렇게 다음날 수녀님과 상담을 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
변호사 상담을 하고 나와서 나는 더 답답해 졌다.
이유는 조씨 아저씨가 신용불량자로 모든것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혼함과 동시에 오히려 내가 불리해지는 상황이며
조씨 아저씨는 이미 가지고 있던 돈 들을 홍콩에 차명 계좌로 다 돌려 놓은 상태
이기 때문에 차명 계좌를 찾아 내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인지, 그 재산을 찾아 내지 않는이상은 모든 상황이
내가 독박을 쓰게 되는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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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셋 며느리 하나 싱글맘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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