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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명품이여야 한다
말도 안되는 이유의 시부모의 폭언과 폭력
by
blandina
Nov 30. 2024
다음 날 시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더 가관인 말을 했다.
시아버지의 어제 행동에 대해
“니가 무조건 무릎 꿇고 빌었어야지, 왜 대들었냐”고
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하죠?”
물었더니 시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아버지가 라코스테도 아니고,
명품도 아닌 크로커다일 티셔츠를 사온 게 못마땅하신 거야.
이민 가방 6개에 물건을 바리바리 싸 올 정도로 돈을 물 쓰듯 쓰고 와서
고작 이거냐고 화가 나셨어.”
그 말을 들으며 속이 뒤집혔다.
그럼 애들 이불이라도 가져다 드렸어야 했나요?
아니면 이민 가방 6개를 시댁에서 다 풀어드려야 했나요?
차마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시어머니는 이어서 말했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돼지고기 요리라도 해서 식사 대접을 해드려.
그러면 풀리실 거야.”
결국 그날 밤,
나는 보쌈 수육을 만들어 다시 죄 없는 죄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당에서 성경 공부를 7년 했다.
원래는 4년 과정이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릴때이다 보니 피정을 가지 못하거나 저녁 모임에 빠질 때가 많아
결국 7년이 걸렸다.
성경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어릴 적부터 품었던 믿음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시부모님과의 시집살이,
그리고 조씨 아저씨와의 부부 관계를 내 힘만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이억만리 떨어져,
애를 낳고 키우며 막장 같은 삶을 버텨내야 했던 나에게 성경 공부는 마지막 남은
위안이자 버팀목이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미친 듯이 성경 필사를 했다.
펜을 움직이며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는 시간들은
내 안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광기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마음이 부서질 듯 아플 때마다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며,
미쳐버릴 것 같은 날들을 겨우겨우 견뎌냈다.
일주일에 한 번 성경 공부를 가는 시간은 내 삶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수녀님을 만나고 말씀을 나누는 그 짧은 순간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고단한 이민 생활을 하며,
조씨 아저씨와의 갈등과 시부모님의 압박 속에서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성경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끔 너무 힘들 때면, 수녀님께 개인 면담을 요청해 기도를 받곤 했다.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내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도리어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비난했다.
"니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우울증에 걸렸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펑펑 쓰면서, 집에서는 띵가띵가 놀고,
가사도우미와 베이비시터까지 두면서 말이야."
그들의 눈에는 내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 소진되고 있었다.
조씨 아저씨와는 9살 차이가 났다.
결혼 전에는 몰랐지만, 결혼 후 알게 된 건 그가 친구도,
속마음을 터놓을 지인도 없는
독고다이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안타깝고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33년 동안 그렇게 홀로 외롭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세상의 행복을 온전히 느끼며 살 수 있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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