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종합편 그 실체를 말하다

막장의 서막을 열다

by blandina


어느 날,


조씨 아저씨는 어딘가 불쌍해 보이려는 얼굴로,


동시에 강단 있어 보이고 싶었던 건지, 내게 말했다.

“친정에서 돈 좀 빌려 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너라는 인간은 얼굴에 몇 톤급 철판을 깔고 살아가는 거냐?’


결국 한숨만 나왔다.

‘아, 이젠 하다 하다 엄마한테까지 돈을 빌리라고 하다니.’

그 순간 내가 이 남자와 왜 살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큰애는 이제 돌도 안 됐고, 배 속에 둘째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갈 곳도, 방법도 없었다.


결국 나는 시동생 와이프, 그러니까 동서에게 부탁했다.

“조씨 아저씨가 친정에서 돈을 빌려 오라는데,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어요.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딸이 잘 산다고 고생 안 하는 줄 알고


멀리까지 시집보내셨잖아요 나는 도저히 연락 못 하겠어요.


동서가 어디서 돈을 구해주면 이자는 내가 쳐서 갚을게요.”


다행히 동서는 자기 친정에서 돈을 빌려와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그러나 문제는 조씨 아저씨의 황소 같은 고집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 사업을 조금 키우는 듯싶더니, 이제는 대놓고 말했다.

“한국에 있는 엄마 집을 팔아서 내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말해봐.”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사업 자체는 현금이 도는 사업이었기에 잘 되면 큰돈을 벌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평생 피땀 흘려 마련한 집을 팔아 사업 자금을 대라니,


그게 말이 되냐는 말이다.


하지만 늘 자금이 부족하다고 몇 달을 나를 들들 볶아댔다.

나도 정말 참다 참다 결국 엄마에게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엄마가 마침 이사를 계획하고 계셨고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이사 가시면서 전세금을 받으셔서


그 돈을 송금해 주신 것이다.


엄마가 보내주신 돈은 억 단위였다.


그 돈을 받자마자, 조씨 아저씨는 숨통이 트인 듯 미친듯이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돈이 벌리기 시작했고,


흔히 말하는 검정 쓰레기봉투에 돈을 쓸어 담을 정도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나는 처음으로 한국이 너무나 가고 싶어졌다.

아이 둘을 데리고 3주간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친정엄마는 늘 그랬듯이 양말 한 짝, 행주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셨다.

엄마는 동대문에 가서 아이들 이불까지 맞춰 놓으셨고,


애들 내복이며 양말, 온갖 물건을 준비해 두셨다.

결국, 이민 가방 6개가 꽉 차서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남미 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는, 시부모님 댁에 들를 준비를 했다.

엄마가 보내주신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기고,


시부모님이 사 오라고 하신 리스트에 맞춰 준비한 물건들까지 챙겼다.

딱히 필요한 건 없으셨지만,


그때 한국 어르신들 사이에서 크로커다일 티셔츠가 유행이라고 하셔서


한 장씩 선물로 사다 드렸다.


이렇게 말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가져다 드린 건 바리바리 한 짐 보따리였다.

다음 날 아침,


조씨 아저씨가 출근하고 난 뒤 시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집으로 좀 오라는 말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헐레벌떡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어제 내가 한국에서 가져다 드린 물건들이 식탁 위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시아버지가 앉으라고 하셨다.

내가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시아버지는 크로커다일 티셔츠를 집어 내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


“너는 부모교육을 어떻게 받고 시집을 온 거냐?”


그렇게 시작된 호통은 물건을 집어던지며 이어졌고,


결국엔 이혼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나는 너 같은 부모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몰상식한 며느리 더 이상 안 볼 테니


당장 가서 이혼해라!”


순간 모든 게 멍해졌다.

하룻밤 집에서 잠자고 오라는 전화가 와서 온것이


어제 비행기에서 내려 하루도 안 됐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부모교육 운운하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침착하게 이유를 여쭈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내가 말대꾸를 한다며 더 화를 냈고,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제야 참았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이혼하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은 이런 집구석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내뱉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눈물을 쏟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퇴근한 조씨 아저씨에게 모든 일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앞으로 시부모님께 생활비 드리지 마세요.

이런 대접을 받고도 생활비까지 드리면 정말 미친 여자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조씨 아저씨는 나를 두 번 죽이는 말을 했다.


“그럼 이혼해야겠네. 나는 부모님께 생활비 안 드리고는 못 살아.”


그 말을 듣고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이 말조차 듣고도 어디 갈 데가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정말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저 어느 날 오늘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인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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