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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열리는 나무 = 자식
자식을 돈으로 보는 시부모
by
blandina
Dec 2. 2024
나도 생활이 어느정도 편해졌고
아이들도 이제 어느정도 커가면서 이전에 고생한거 보상 받기라도 하듯이
나 또한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다녔다.
골프를 가지 않는 날은 쇼핑에 가서 명품 쇼핑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머리 부터 발끝까지 맛사지를 하루종일 받으러 다녔고
그야말로 돈을 다발로 들고 다니면서 쓰는게 그때는 생활이였던것 같다.
그리고 조씨 아저씨가 골프를 비지니스로 치고 다니니 자꾸 룸빵을 가게 된다며
나보고 골프를 배우고 같이 치러 다니면 최소한 룸빵은 안 가게 될거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렸을때 부터 운동신경도 좋고 체력이 특등급 이였던
나는 골프를 배우고 얼마 안 되서 나에게 골프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것을 알고 되었다.
그러면서 재미가 붙으니 실력도 몇년을 배운 남편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었다.
나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방법이 생긴것이다.
일주일에 3번씩 프로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고 시간이 나면 혼자 필드에 나가
캐디를 대리고 대통령 골프를 즐기기도 하였다.
아이들을 그 지역에서 제일 유명하고 비싼 사립학교를 보내고
나도 매년 좋은차로 바꿔타며 여행은 2주에 한번씩 가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이쯤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부모의 조씨 아저씨가 총각때 갚지 않은 돈을 갚으라는
독촉이 시작되었다.
아들이 돈을 좀 버는것 같으니 이제 돈 토해내라는 것이였다.
그때 쯤 나는 슬쩍 조씨 아저씨에게 사업자금으로 받은 돈
그건 우리 부모님 집 전세금이다 우선 그거라도 조금씩 갚자고 운을 띄웠다.
그런데 조씨 아저씨 역시나 화장실 갈때 마음과 나올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대답도 없고 갚을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자꾸 조씨 아저씨가 총각때 가져다 쓴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시는
시부모한테 처음으로 얘기를 했다.
조씨 아저씨가 이 사업 시작하면서 우리 친정에서 사업 자금을 받아서 쓰고
갚아야 하는데 갚을 생각을 안 하니 두분이 말씀을 좀 해달라고 했더니….
역시나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은 진리였다!!
누가 친정에서 돈 가져다 쓰라고 했냐고 그건 니가 알아서 하란다.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건 조씨 아저씨 인데 나보고 돈을 알아서 갚으라니?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산이란게 이런거구나.
검은머리 짐승 거두는거 아니라고 하는 옛말이 정말 틀린게 하나도 없다고
뼈저리가 느끼고 또 느꼈다.
그때 부터 였을까 나는 이 세사람이 인간 같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심하다고 생각 할수도 있지만 그때 나는 진심으로
우리 부모님에게 죄 지은 죄인이였고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그들이 정말 짐승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말로 내 뱉는 말들이 전부 말이 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조씨 아저씨가 의처증이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고,
시부모란 사람들이 막장 시집살이를 시켜도 나는 그냥 어찌 할수 없는
애들이 대학갈때까지는 나 죽었네 하고 내 팔자가 이렇게 타고 난 팔자인가 보다 하며
팔자 타령하며 참고 또 참았다.
심지어 나는 그때 내 이름을 ‘어질게 닦으라는’ 한자 이름으로 지어주신
아빠를 원망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한자 풀이중에 왜 하필이면 이름을
어질게 닦으라는 것인가 싶었다.
아들이 돈 좀 버니까 차 바꿔주고 매달 생활비 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외식 시켜주고
시도 때도 없이 여행 갈때마다 같이 모시고
심지어 우리 가족만 여행을 가면 집안이 난리 한바탕이 나는건 일도 아니였다.
시부모를 두고 니들끼리만 가는 건 무슨 버릇장머리 없는 행동이냐며
불효자를 만드시니 우리는 꼭 아이들 친구 가족이랑 같이 가지 않으면
무조건 시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가는게 너무나 당연한 것 또한 무슨 일만 있으면
돈 내놓으라고 전화하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들 부부가 아니 우리 부부 포함 시동생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돈 열어 놓으면 돈 따러 달려드는 사채 업자들 같았다.
한마디로 이 시부모에게 아들과 며느리는 돈 열어주는 돈나무 였던 것이다.
이뿐인가 나는 시부모의 3분 대기조 였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동서도 마찬가지 였다.
동서는 시동생이랑 연애를 7년을 했는데 영화관에서 영화 보다가도 달려가고
집에서 자다가도 달려가고 먼거리에 있어도 무슨수를 써서라도 불러냈다고 한다.
이유는 시어머니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운전수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것이였다.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니시라고 해도 죽어도 택시는 안 타신다는 똥고집으로
누구든 운전수로 불려가야 했다.
그런 시부모 근처에 이사를 했으니 나는 그날로 부터 시부모의 3분 대기조
그리고 집에서 음식 하시기 싫으면서 식사하러 오시는 그냥 한마디로
옆집 사는 몸종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모님께 어른 공경하라고 배웠고 시부모님도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했기에
단 한번도 싫다 하지 않았다.
그게 큰며느리의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시어머님이 닭고기 돼지고기를 안 드시기에
닭고기 돼지고기를 좋아하시는 시아버지는 매 끼니때마다 그걸 못 얻어 드시니
내가 하는 시골 음식들을 좋아라 하셨다.
하지만 때 되면 냉장고 바꿔줘라,
어디 뭐가 좋은게 나왔다드라 사러 가자,
차를 바꾸고 싶다,
현찰이 필요하다,
여행가고 싶다,
뭐가 먹고 싶다 등등
사실 너무 많아서 생각도 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여태까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가지 중 하나가
한 동안 한국에 여행 가시고 싶다고 아들들을 어찌나 들들 볶는지
결국 한국을 보내드리기로 했단다 심지어 비지니스를 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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