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나는 정말 곱게 늙어야지
by
blandina
Dec 3. 2024
너그럽고 너그럽게 이해해서 일평생 한번이라고 치자.
그런데 한달 이상 머무르실거라는데 한국에 친척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굳이 굳이
신라호텔에 한달을 투숙하신단다.
자기들이 무슨 재벌들도 아니고 어이가 없던 와중에 한달을 숙박 예약을 했는데
일주일도 안되서 전화가 왔다.
신라호텔이 시내까지 나갈려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불편하니
명동 롯데호텔로 바꿔 달란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르신들 불편하시다니 그날로 숙소를
명동 롯데호텔로 옮겨드렸다.
며칠 후 시어머님 조씨 아저씨께 전화가 온다.
돈 떨어졌으니 돈 보내라고 알고보니 오백만원을 일주일도 안 되서 다 썼다는것이다.
그래서 또 오백을 보내줬다는 이걸 내 귀로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는데
부부싸움을 안 하는게 정상인가?
조씨 아저씨는 우리 부모 돈을 단 한푼도 안 갚고 있으면서
자기 부모 비지니스 태워 보내 신라 호텔에 롯데 호텔에 일주일에 오백만원씩
용돈 보내 기절하고 팔짝 뛸 노릇이였다.
거기다 보태 사돈인 우리 친정엄마한테 문자 메세지로
필요한 물건 리스트를 보내셨단다.
자기들 돌아가기 전에 그 리스트에 있는 물건 사서 호텔 로비에 갔다 놓으시라고….
이걸 도대체 어떤 생각과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정말 알수가 없을 정도 였다.
내가 엄마한테 대충 몇가지만 사서 갖다 주라고 했는데 엄마가 거기서 하시는
말씀이 니 시부모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집에 돌아가서 너를 들들 볶을걸 아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그걸 준비 하시느라 이리 뛰어 다니고 저리 뛰어다니며
띵가 띵가 여행 다니는 시부모 대신 우리 엄마는 물건을 사러 뛰어 다니셔야만 했다.
도대체 딸 가진 엄마는 시집을 보내 놓고도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또 시부모가 한국에 가서 일가 친척들을 만나서 아들들이 돈 잘 번다고 어찌나
떠들고 다녔는지 온 친척들한테 전화가 오고…
내가 정말 지긋지긋 하게 듣고 또 내가 입버릇처럼 한말이 있다.
시부모는 이민 가기전에 강남에 살았다고 한다.
자기들은 강남 토박이 떵떵거리며 살다 이민 왔다고 그옛날에 강남이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돈 많은 강남에서 잘 사셨는데 왜 그지같은 남미로 이민을 가셨는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도대체 옛날 옛적 강남 산 얘기는
왜 온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옛날에 강남 살아던게 무슨 벼슬인가?
그 시대에 강남 살았던 사람들은 다 그런건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렇게 치자면 그 옛날에 우리집에 금송아지 몇백 마리가 있었다는데
그건 옛날 이라 지금은 어디 가고 없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지
그 분들은 아마도 관뚜껑 닫으면서도 그 옛날 옛적 강남얘기를 할 것이다.
한국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안된 그 해 연말
1인당 3-4백만원씩이나 하는 호텔을 일주일 예약을 했다
남미는 12월 25일부터 1월 1일 까지 여행지 어디든 2-3배로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두세달 전에 예약을 안 하면 갈 수도 없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딱히 집에서 할게 없기 때문에 연말이면 거의 모두들 가까운 곳으로라도 여행을 간다.
그렇게 엄청나게 비싼 휴양지 호텔을 예약해서
시부모님 두분 우리 식구 5명 시동생네 식구 5명 벌써 금액적으로도 얼마인가?
그것 뿐인가 가서 먹고 쓰고 놀고 등등 이렇게나 어마무시한 돈을 쓰러 가서도
시부모는 늘 불평불만이 였다.
랍스타가 왜이렇게 작냐, 음식이 짜다, 시끄럽다, 덥다 등등 너무나도 어이없는
불평불만이라 이쯤되니 모든 식구들이 그냥 시아버지의 불평불만을
귓등으로 안 듣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다 한날 실컷 좋은밥 먹구 잘 놀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화가 나셨단다
정말 뜬금없이…?
그냥 이유는 없었다.
뭐가 또 배알이 꼴려서 자식 며느리들을 들어다놨다 하고 싶은것이였다.
어쩌다 보니 그날의 타겟이 내가 되었다 시아버지의 호텔방에 불려 들어가 보니….
나의 친정 오빠가 한국에서 여행을 왔다가
한 1-2년만 남미에서 지내보고 괜찮으면 남미에서 자리 잡아 보겠다고 하며
우리집에서 지낸지 6개월이 넘어갈때 쯤이였던것 같다.
오빠가 우리집에서 비비고 사는게 맘에 안 드니 한국으로 돌려 보내라는 것이였다.
우리 오빠가 집에서 놀고 먹으며 우리집 밥을 축내는 백수도 아니고
나름 밖에 나가서 일도 하고 언어도 배우러 다니고 집에 오면 살림 살이도 도와주고
애기들도 다 봐주는데 우리 오빠가 무슨 우리집에 들러 붙은 거머리 처럼
얘기를 하는 것이였다.
자기 아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밥 맥이게 아깝다는 듯이 얘기를 하는것이다.
정말 나는 그런 이유로 한 순간에 또 죄인이 되고 만것이다.
죄송하다 수십번 말씀드리고 돌아가면 한인타운으로 분가를 시키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그 방을 나올수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말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족들이 너무 속상해 할까봐
그리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차마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죄송하다 분가 시키겠다고 안 했으면
아마 시아버지라는 사람은 예전에 면상에 물건 집어던질때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때보다 지금이 자기 아들이 기세등등 돈을 잘 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들이 버는 돈이 왜 자기의 기세를 등등하게 해주는것인지 모르겠지만
돈 잘 버는 아들이 어째서 돈을 잘 버는지
돈을 버는 회사의 모든 이름이 내것이고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투자금이
우리집 돈이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 나오는 발상들인지 나는 도무지
그 집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 할수가 없었다.
나는 조씨 아저씨의 의처증이 그저 내가 9살이 어리다는 이유로 합리화를 하며 살았다.
조씨 아저씨가 나를 일을 못하게 하는 이유는
자기도 어렸을때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가 항상 집에 있었기 때문에
여자는 밖에서 일 하는것 보다 집에서 살림하고 애들을 키우는게 정답이라고 했다.
그래 나도 그말에 동감을 한다.
나는 반대로 어려서 부터 엄마, 아빠가 맞벌이에 두분 다 힘들게 일을 하셨기 때문에
매일 학교에서 끝나고 오면 엄마가 차려두고 출근하신 밥상에 동생이랑 둘이 하교를
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던 기억만 있었다.
늘 오빠와 나 그리고 동생 우리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학교를 다녀와서
밥을 먹고 그걸 치우고 숙제를 하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가 용돈으로 두고 가신 천원짜리 몇장을 들고 집에서 30분거리에 있는
할인마트에 가서 콩나물 한봉지, 두부 한모, 계란 한판을 사 들고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셋이서...
그것 마저도 행복한 우린 사이좋은 남매들이였다.
keyword
호텔
한국
신라호텔
6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blandina
직업
셰프
아들셋 며느리 하나 싱글맘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남기
팔로워
6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돈 열리는 나무 = 자식
의처증, 사랑인가? 집착인가?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