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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처증, 사랑인가? 집착인가?
남편의 의처증은 전업주부 이상 무엇도 할수 없다
by
blandina
Dec 4. 2024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지금도 엄마, 오빠, 나, 동생은 하루에 번갈아 가며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사이들이 좋다.
엄빠는 한국에,
동생은 중국에,
오빠는 남미에 (현재는 한국에서 요양중),
나는 미국에 우리는 이렇게 각자 다른나라에 살지만
언제나 항상 같은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연락을 하며 살고 지낸다.
그래서 나는 조씨 아저씨가 전업주부를 원하기도 했고 애기들이 어리기도 했고
사실 내가 한국에서 자랐으니 남미에서 딱히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조에 그리고 아이들 교육에 미친듯이 열을 쏟았다.
그게 나의 일이고 내가 잘 하고 열심히 할 수있는 일이였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에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아이셋이 잠 도 못깬 상태에서
교복을 갈아 입히고 간식 가방 세개를 챙기고
차에서 먹을 아침을 챙겨 아이들을 차에 때려 넣듯이 여기 저기 눕히고
40분 거리 학교로 출발을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면 아침 6:50분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줌과 동시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조씨 아저씨가 먹을 빵을 사고 집에 와서
이것저것 정리를 좀 하고 나면 빵과 커피를 준비해 조씨 아저씨를 깨우러 간다.
조씨 아저씨가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날 조씨 아저씨가 입을 출근복을 침대에 준비해 두고
조씨 아저씨가 출근 할때까지 옆에서 잔 심부름 한다.
조씨 아저씨의 머리속에는 출근 할때 배웅해줘야 하고 퇴근할때 마중을 해줘야 하는게
여자의 도리이기 때문에 출근하기 전까지는 외출 하는것을 싫어했고
퇴근하기전에는 꼭 외출에서 돌아와서
조씨 아저씨의 퇴근길을 마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요즘에도 이런사람이 있기는 할까?
아니 사실은 그때도 그런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그냥 나는 그게 맞다고 그렇게 사는게 내가 살아가는 길이라고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것 같다.
모든걸 떠나 내가 참고 살지 않으면 그 때의 모든 평화가 깨질거라는건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크고 일을 하고 싶어졌다.
사실 처음에 얘기 하지 않았던 내 꿈은 패션 디자이너 였다.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옷을 너무 좋아했다.
그냥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것 같다.
어렸을때부터 누구한테 배운것도 아닌데 남동생과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이 또래들과 다르게 남동생과 난 옷을 잘 입었던것 같다.
옷을 잘 입었다기 보다는 관심이 있다보니
센스가 생는것이라고 말하는게 맞는것 같다.
대학 전공을 하고 싶었지만 옛날사람도 아닌 울 엄빠는
꼭 안정적인 직장을 들어가야 한다는 옛날사람 사고 방식으로
결국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집에서 젤 가까운 2년제 사무정보통신
현재는 인터넷비지니스 학과를 들어갔다.
사실 내가 원하는 학교를 간게 아니니 나는 얼마나 학교 다니는게 재미가 없었겠는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학교 가서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고 누구랑 대화 하는것 조차
그냥 구찮았던것 같다.
흔히 요즘 말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가 볼매라며 다가와준
아직도 나의 베프인 엄굥이란 친구가 생겨
그나마 나는 어찌저찌 학교 생활을 한것 같다.
그래서 어릴적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지만
사실 죽기전에는 꼭 한번 재미라기 보다는 정성들여
내이름으로 내가 만든 옷을 한번쯤은 만들어 보는게
아직도 나의 소원 중 하나 이기는 하다.
어느쯤에 아이들도 많이 컷고 나도 일을 해보겠노라고 조씨 아저씨에게
반항 아닌 반항을 해 보았던 적이 있었다.
조씨 아저씨의 대답은 나가서 일 할거면 한달 생활비를 다 벌어오고
애들 케어도 하고 지금하고 하나도 변함없이 니가 하는 집안일도 다 하면서
그 큰돈을 나보고 벌어 오라는 것이었다.
알고 있다.
그때 당시에 조씨 아저씨가 나에게 주는 생활비가 얼마나 큰 돈인지
그때도 지금도 어마무지 큰 돈인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경력도 없고 말도 못하는 내가 나가서 할수 있는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또 한번 포기라는 것을 해야 했다.
그사람은 그저 내가 밖으로 나 도는게 싫었던건 충분히 이해한다
의처증도 중증중에 중증이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의처증 증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열 할수가 없다.
이게 그냥 내가 친구랑 대화하는 수다정도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 의처증 증세에 대해 얘기를 하겠지만
이것은 어느 누가 볼지 모르는 글이라는게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처증중에 하나는 집에 CCTV가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조씨 아저씨의 말로는 아이들을 보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분명
그건 아이들의 위한 수단이 아니였을거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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