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 = 공황장애시작

극성엄마의 미국입성

by blandina


수 많은 얘기들을 뒤로 하고


2009년쯤 미국에서 한국에게 무비자를 허용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1년에 한번씩 아이들을 대리고


어학연수를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11월 방학이 시작하면 아이셋을 대리고 미국에 와서


2개월정도 체류를 하면서 아이들은 사립학교와 오후 에프터스쿨에 보내며


아이들 영어공부를 시켰다.


돈이 있으니 오죽 치맛바람을 날리고 다녔겠는가?!


목소리도 크고 성격도 급한 강남 팔학군 뺨치는 극성 엄마 였다.


남미에서도 학교에서 수영, 유도


주말에는 한글 학교, 골프, 피아노, 바이올린, 도자기교실 정말 아이셋을 데리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몸이 열 개여도 모자를 정도로 사교육을 시키고


돌아다니는 정말 유별난 엄마중에 하나였다.


또 사립 학교 리스트를 꿰차고 있어서 어느 학교가 무엇이 좋은지


어떤 유형의 아이들은 어떤 학교가 맞는지,


또 어떤 유치원이 좋은지 그 유치원에 왜 좋은지 나에게 물어보고 상담하는


애기 엄마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카톨릭 신자 였기에 아이들은 성당 유치원을 다녔지만 유난스러운 막내덕에


한인타운 유치원을 모두 섭렵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더불어 성당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까지 받을 정도로


나는 아이들 육아교육이나 상담 또 책 등등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면


온갖 것들을 알아보고 공부했다.


그런 유난에 끝판왕인 엄마가 미국에 아는사람도 한명 없고


영어도 못하는데 아이셋을 영어 공부 시키겠다고 극성을 부렸으니


그것 또한 얼마나 공부를 했겠는가 정말 유난스러웠다.


지금 어학연수 학원을 차려도 될 정도로 나는 열심이고 극성이였다.


혼자 억척스럽게 그지 없는 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서 그렇게 할수 있었을까 싶을정도이다.


그러다 3년쯤 지나서 큰아이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우리도 미국에 와서 살면 안되겠냐고...


그런데 그쯤 미국에 지인으로 부터 투자이민 권유를 받았고


또 그것에 관심이 많았던 조씨 아저씨는 자기의 직업특성상


남미는 위험하니 투자이민을 가자고 권유를 하였다.


나는 부모님께 부부는 싸움을 하고 서도 각방을 쓰면 안 되고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밥상은 차려줘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기러기 부부를 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었다.


남미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나 또한 이미 권총 강도를 3번이나 당했고,


차 유리창을 깬것도 몇번이고


또 조씨 아저씨가 직장에서 몇번이나 몇명의 권총 강도들과 대치를 한적이 있었기에


이해를 못하는것은 아니였다.


주위에 친한분도 납치를 당한적도 몇차례 있었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남미를 지긋지긋해 하며 미국으로


이민 가신 분들도 많은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민을 가지 않겠다는 와이프 또는 남편이 합의가 안 되서


이혼한 케이스도 봤다.


권총 강도룰 몇번 만나고 나서 나는 방탄차를 타고 다녔다.


그건 나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랬고


또 조씨 아저씨의 직업이 워낙에 조심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조씨 아저씨도 나도 그냥 방탄차를 타고 다니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들이 닥칠 강도 또한 미리 사전에 방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를 선택했고 아파트를 들어가기


전 경비실에 확인을 1차로 한다 경비실 유리도 당연히 방탄유리이다.


2차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컨트롤을 누르면 지하 주차장 입구의 철창 문이 열린다.


그 첫번째 철창문이 열리고 주차장 입구에 들어가면


그 첫번째 철장문이 닫혀야만 두번째 철장문을 경비실에서 열어준다.


그것이 우리가 주차장으로 들어갈수 있는 절차이다.


엘리베이터도 한 층에 하나이다.


다른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도 있고 우리 아파트층에 문을 열고 들어와도


현관이 잠겨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우리층에 내린다고 해도 들어올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게 남미에서 어느 정도 보통 중산층이 강도와 위험을 방지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고 위험요소를 차단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커 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미국을 왔다갔다 하며 알게 된것이다.


남미에서만 살때는 그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미국에 와서 보니


굳이 방탄차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마트를 가도 어디를 가도 미국은 누구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엄마나 아빠가 픽업과 드랍을 해줘야 하고


부모가 없이는 아무대도 가지 못한다.


더구다나 방탄차 없이 어디 외출을 한다는 것은


그때의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던 것 같다.


어른도 답답한데 태어날때 부터 그렇게 살아온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자유를 알게되면 그것들을 이해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라는 생각을


미국에 오가면서 나도 그리고 아이들도 알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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