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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병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시작
by
blandina
Dec 7. 2024
남미에서 온 집안에 철장을 달고 살았던 우리가 유리창만 있는 하우스에서 살게되니
저녁에 잠을 못자는것이였다.
불안하고 집앞에 누가 지나가기만 해도
발자국 소리가 무서워 저녁내내 잠을 못 이루고 창문을 지켜보며 밤을 샛다.
나중에는 집에 철장을 달으려고 알아보기까지 했다.
남미에서 이중 삼중으로 철장달린 집에서 살다
이건 뭐 황무지에 허허벌판에 사는 기분이었다.
그냥 맨몸으로 밖을 돌아다니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조금이라도 될까?
나는 그런 상태로 거의 3개월을 잠을 못자고 점점 피패해져만 갔다.
나중에는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신경쇠약이 심해져 심정지가 오기도 했고
그럴때마다 마트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사 먹어야 했다.
어느 날은 운전을 하다 정신줄을 놓기도 하고
아이들 간식을 먹이다 쇼파에 쓰러져 호흡을 하지 못할지경에 이르렀다.
또 하루는 영어 공부를 한다고 어덜트 스쿨에 갔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한국 아줌마들이
나를 들춰 업고 근처 한국병원에 가기도 했었다.
의사 선생님은 도저히 왜 이러는지 이유가 없댄다.
이걸 알려면 MRI CT를 찍어야 하는데
내가 그때 당시 보험이 없어서 현찰로 만오천불 정도는 줘야 찍을수 있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서 나와 또 마트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증상을 더 심하게 만든건 또 한가지 우리 셋째 아이의 문제였다.
큰아이 둘은 영어도 어느 정도 하던때였고
한국말도 또 남미에서 살고 학교를 다녔으니 3개국어가 가능 했기 때문에
학교가서 학교 수업이 조금 힘들 뿐이지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셋째는 언어 시작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그 탓에 한국학교를 보냈었기에 오로지 한국말만 했었다.
당장 미국에 와서 학교를 보내 놓으니 학교에서 영어를 못하고 답답하니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친구들이 그냥 친하게 놀자고 표현하는 것에 거부를 하고
자꾸 친구들과 사소하게 싸움을 하고
그것들이 점점 심해지면서 선생님의 주의를 받게 되고
나중에는 교장선생님께 불려가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그
렇게 두세번 교장실에 불러 다닌 나는 영어도 못하고
그저 교장실에서 눈물바람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연거푸 하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장실에 불려간날 교장선생님이 한번 더 이런문제가 생기면
전학을 가야 한단다.
이제 학교 들어온지 3개월도 안 됐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아이들 대리고 미술 치료를 하러 다니고
영어 개인 과외 선생님을 붙혔다 그때는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개인 과외를 한지 3개월만에,
그러니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지 6개월만에 학교에서
상장을 받으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게 무슨 기적이란 말인가?
그 학년에서 영어 성적이 제일 빨리 좋아진 아이로 뽑혔단다.
내 아이가 머리가 좋아서 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때는 매일 매일 기도가 아니면 내가 할수 있는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미 내 마음속은 조씨 아저씨와 몸이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도 포함
나는 서서히 조씨 집안과 마음을 정리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심정지 상태도 더욱더 심해지고 마음 고생도 심해졌으며,
나는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그때쯤 나는 나쁜 생각도 참 많이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점이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최고 지점을 찍을때 였던것 같다.
우리는 투자이민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아서
미국에 거주 할 수 있는 날이 3개월을 넘기면 안됐다.
그래서 처음엔 한국으로 가서 2주정도 지내다 돌아오게 되었는데
2주 내내 나는 한국에서 심정지에 대한 별의별 검사를 다 하게 되었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과 백병원 두군데에서
심장에 관한 모든 검사와 전신 MRI 와 CT 그리고 온갖 피검사와 내시경,
심지어 화교가 30년째 운영한다는 용하다는 한의원에 까지 가서
병명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디에서도
내가 왜 심정지가 오는지 호흡 곤란이 문제가 되는지 원인을 찾을수가 없었다.
유방암 검사와 자궁암 검사를 하러 산부인과에 갔다가
그곳에 계신 선생님께서 내가 한국에서 와서 검사한 검사지를 모두 검토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검사를 했는데도 병명이 안 나온걸 보면
이건 정신적인 문제인것 같다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지만
정신과에 한번 방문해보시는게 어떻겠냐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나도 그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그냥 그렇게 온갖 쓸데없는 검사들만 잔뜩 하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내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떻게 케어를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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