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의 막을 내리다

별거의시작

by blandina


어느날 조씨 아저씨가 시부모를 모시고 미국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 아직 우리 영주권 문제도 해결된게 없고 내 몸상태도 좋지 않았고


여러가지 상황을 봐도 시부모가 지금 꼭 미국에 여행을 올 타이밍은 아니였다.


그런데 우리 막내가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는 행사가 있어서


그걸 핑계삼아 꼭 와야 겠다는 것이였다.


나는 조씨 아저씨에게 나의 상태도 얘기했고,


시부모가 여행을 오면 사실 그냥 집에만 있다 가시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여행도 시켜 드려야 하고 나 또한도 신경 쓰게 되는 부분이 많으니


될수 있으면 다음 기회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전달을 했으나,


조씨 아저씨도 시부모도 무대뽀인걸 알기에 사실 나는 포기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씨 아저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왔고,


그 때부터 나의 한계는 목구멍 까지 차 오르며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달아


하나 둘씩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명품관에 가더니 아무렇게 않게 몇천불짜리 가방을 지르고


여기저기 여행 보내드린다고 또 몇천불을 쓰고…


한 동안 조씨 아저씨는 나에게 생활비를 줄일테니 앞으로는 아껴쓰라고 잔소리를


그렇게 해댔는데 정작 자신과 부모들은 명품관에 가서 명품을 지르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는가??!!


두 아들 등골 빼먹는거 였다.


시부모가 그렇게 또 여행을 가게 되고


그날 저녁 조씨 아저씨는 한인타운에 형님들을 만나러 간다며


룸빵을 가게 될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 알겠다 다만 너무 늦지만 말고 절대 음주운전은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는 지금 영주권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세상에 없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조심히 살아야 한다고 몇번을 얘기를 했었는데


새벽시간까지 들어오질 않길래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룸빵에서 술을 먹고 있다는 것이였다.


알겠다고 제발 동시를 부르고 운전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새벽 3시가 넘을때쯤 조씨 아저씨는 술을 쳐 드시고


떡하니 운전을 하고 온것이다.


나는 새벽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고 내일 아침에 학교도 보내야 하니


그렇게 그냥 참고 잠이 들었다.


그날이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된 나의 생일 아침이었다.


큰아이를 먼저 학교를 보내 놓고 둘째 셋째 아침을 준비 하다 말고


조씨 아저씨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참 무서운 사람이란것을….


눈이 뒤집히니 정말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였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 빨리 이집을 나가야 겠다 아니면 우리 둘중 누구 하나는


오늘 여기서 죽어 나가겠구나 싶은 마음이였다.


그래서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케리어를 꺼내고


내 짐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대한항공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는 사이 조씨 아저씨도 당황을 했는지 말리기도 하고 큰소리도 치고 했지만


나는 그 순간에는 어떠한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계속 마음속으로 빨리 이자리를 뜨자


그것 밖에 방법이 없다 라고 되뇌이고 있었다.


조씨 아저씨는 언제나 그렇듯 치사하기 그지 없었다.


나가려거든 차키, 집키, 핸드폰, 카드, 현찰 등등


니 옷 말고 그 어떤것도 이 집에서 돈 될만한 물건은 들고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였다.


이미 이전에도 하도 그렇게 많이 당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 그대로 나는 내 옷가지 몇개만 챙겨 택시를 불러


그길로 엘에이 공항으로 가서 티켓을 끊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 나는 엄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렇게 한국으로 가지 않았다면


더 비극적인 일이 생길거란 촉이 왔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어떠한 상황 설명도 하고 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였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해 나의 고딩 베프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는 집근처에 호텔을 잡아주었고


나는 호텔에서 며칠 지내며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바로 옆에 있던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나는 그날 처음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너무 나도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였다.


첫날 20장 정도 되는 종이에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이 약 처방을 해주시면서


이 상태로 2주에 한번 한달에 한번은 너무 위험하니


일주일에 두번씩 병원에 방문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원래 그렇게 하는것인줄 알고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원래 공황장애나 우울증이라고 해도


한달에 한번 심해도 2주에 한번 가는게 정상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약 처방과 함께 선생님은 나에게 팜플렛 하나를 주셨다.


그걸 받고 나는 당황 스러웠다.


그건 자살위험방지센터 팜플렛이였다.


혹시 너무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이곳으로 전화를 하라는 것이였다.


내 상태가 그렇게 위급하고 심각했던 것을 나는 그 팜플렛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호텔에서 며칠을 지내며 나는 한국에서 지낼 고시원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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