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송을 시작하다

이혼소송.진흙탕싸움의 끝판왕

by blandina


고딩 친구가 내가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을 너무 모르고 자기랑 너무 멀어지면 불안하다며


친구의 집 근처 고시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혼자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매일 만나 밥을 먹고


시간내서 밥과 반찬을 해다 주고 좋은걸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노력을 했다.


본인도 어린 아이들이 있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남편도 챙겨야 하는데


그때 그친구에게 자기 가족보다 내가 먼저였던게


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고시원에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동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헛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때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떡 케이크를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문화센터에 가서 떡케이크를 배우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서 문화센터 자격증 이지만 그때는 그게 뭐라고


나름 혼자 기뻐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또 배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미국에 있는 한국 이혼 변호사를 알아보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


변호사는 우선 이혼을 하려면 미국에 들어와서 소장을 접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동안 변호사와 서류를 준비를 해가면서


앞으로 이혼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미국에 들어가면 무엇 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그때는 이혼을 시작하면 정말 3-4개월 안에 금방 끝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은 소송이 6개월이 넘어가고 1년이 넘어가는 동안


몇번에 법원 출석을 하고 미친듯이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게


다 돈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당 400불이나 하는 변호사는 나와 이메일을 주고 받고 전화통화 하는것,


법원에 출석하고 출석하는 동안 주차비, 출장비, 통역비 등등


한번 법원 출석을 하고 나면 몇천불이 나가는건 일도 아니였다.


변호사 비용을 대야 하는데 돈이 한푼도 없이 나온 나는 남동생에게 계속


변호사 비용과 생활비를 받아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이혼 소송이 끝나는 않는 이유는 조씨 아저씨가 숨겨논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다 변경해서 변경했다는 서류를 찾아내서 확인하고


판사에게 또 그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판사가 검토해야 하고


이런 과정을 끈임없이 반복하고 또 이런 사실을 조씨 아저씨가 절대 아니라고 하니


그걸 또 우리 변호사와 상대편 변호사가 대질 신문을 해야 하는데


날짜만 잡아놓으면 상대편 변호사가 파토를 내고….


또 법원 출석만 잡히면 조씨 아저씨는 일을 핑계로 남미로 피신해 버리는 등


상대편 변호사와 조씨 아저씨의 끊임없는 거짓말로 재판이 끝나질 않았다.


어쩌다 재판에 참석을 해도 상대편 변호사와 조씨 아저씨가 하도 거짓말을 해 대니


판사가 둘다 퇴장하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재산 분할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가져다 쓴 돈을 받아야 한다고


분할 목록에 써 넣었더니 조씨 아저씨 홍콩계좌에서 문서를 위조해서 돈을 갚았다고


재산분할 해줄 이유가 없다며 떡 하니 판사에게 위조서류를 제출한 것이다.


이것 뿐인가 내 인스타를 염탐해서 온갖 사진들을 출력해 판사에게 제출해서


돈이 남아 돌아서 여행도 다니고 일도 한다고


본인은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돈을 못 벌고 있으니 나보고 양육비를 달라는것이였다.


아픈 몸으로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일은 해야 하고


여행은 친구들한테 얹혀서 다녀온것이고 이런 구질 구질 한 얘기를


내 입으로 할 정도로 정말 이혼소송은 진흙탕 싸움 이였다.


5년의 이혼소송의 결과물은 양쪽 이혼 변호사들에게 들인 돈과 5년의 시간과


나에게 남은 상처들과 한 박스 가득남은 종이 서류들 뿐이였다.


알고 있었다.


조씨 아저씨와의 이혼이 절대 쉽지는 않을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영혼을 더이상 갉아 먹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분명 나에게도 아이들 에게도 단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지 않다는것을


알았기에 나는 두번 다시 조씨 아저씨와 합칠 마음 따윈 먹지 않았다.


나는 3개월 체류기간 동안 아이들을 하루라도 더 보기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아이들은 내가 대리고 오려고 법원에서 명령받은 서류를 들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는 조씨 아저씨가 법원에 출석하기 싫어서 시부모를 미국에 대려다


놓고 브라질로 가버린 상태였다.


집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엄마랑 같이 가자고 했고,


시부모는 나에게 험한 욕을 하며 애들을 못대려가 하며 서로 또 대치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경찰을 불러 아이들을 대려 가겠다고 하며


법원 명령 서류를 보여줬고 경찰도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했지만


결국 경찰이든 법원이든 결정은 아이들의 몫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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