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이란 병은 아직도 사람이 죽을수 있다

죽을고비의 시작

by blandina


큰아이는 나에게 “엄마 경찰들은 돌려 보내고 나는 지금 아빠도 브라질에 가 있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 엄마를 따라 갈수 없어”


이렇게 말하는 큰 아이에게 나는 더이상 뭐라고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큰아이 때문에 경찰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한다며


나에게 변호사와 상의 후에 다시 연락을 하자고 하며 돌아갔고


나도 더이상은 어찌 할수 없이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내가 미국에 오래 거주할수 없으니 미국에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게 3개월후 나는 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내 몸상태가 이상해졌다.


크게 아파 본 적도 없고 병원 신세를 지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2~3주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이 있는게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입원을 하라고 했다.


그것도 큰 병원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결핵에 걸린 것이였다.


결핵인걸 알고 나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게 나의 발 목을 잡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될줄을 몰랐다.


결핵약은 15알이다.


그걸 하루에 3번 먹어야 하는데 이 약은 몸에 나쁜 균을 다 죽이지만


좋은 균도 다 죽이는게 특징이며,


약을 복용하는 동안 몸에 있는 장기들이 너무 약해지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다.


그러나 나는 일상생활이 문제가 아니였다.


약을 복용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약이 너무 독해서 간수치가 올라가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고 또 다른 부작용으로 알러지가 심해져


온 몸이 화상을 입은것처럼 부어올라


정말 눈동자 빼고는 피부가 정상인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엄마가 병문안을 오셨는데 나를 못 알아 볼 정도 였으니


그 정도면 말 다 한 게 아닌가?


약 부작용으로 인해 더이상 그 15알의 약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치료를 안하면 큰일이니


나는 병원에 꼬박 3개월을 감옥같은 1인 격리병동에 입원을 해서


15알 알을 하루에 1미리그램씩 늘려가며 매일 매일 약을 테스트 했다.


3개월을 테스트를 하고 약을 12알을 조합해서 먹게 되었고,


15알을 6개월에서 1년을 먹으면 완치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최대 조합이 12알 이 였으니 나머지 3알을 또 1년을 먹었어야 했다.


그러니 나는 꼬박 2년 반을 결핵 치료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매달 두번씩 주치의 선생님께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객담검사를 하고


시시 때때로 또 약 부작용으로 119에 실려가며


나는 미국에 돌아올수 없이 3년이란 시간을 한국에서 병치료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아이들과 연락은 전혀 할수가 없었다.


조씨 아저씨가 아이들과 연락할수 있는 선은 다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시부모와 조씨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희들을 버리고 간거라고


세뇌를 시켰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 그렇게 세뇌를 당하다 보니 아이들도 마음으론 그렇지 않았어도


아이들이 나서서 나에게 연락하는건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이였다는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2019년 말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고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줘야 하니


나는 친한 동생집에 방을 하나 빌려 침대 하나 책상 하나인 방에서


다시 미국생활을 시작 하였다.


그래도 다행인거 내가 한국에서 하고 있던 바리스타, 총괄 매니져를 하게 되어서


나는 금방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실 매니져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다.


미국에 와서는 안정적이게 주말에 쉬고


편히 일하는 회사원이 하고 싶었던 바램이였지만


영어도 부족하고 지난 15년동안 경력단절에 할줄 아는거라곤


커피 뿐이니 어쩌겠는가 나에겐 초이스가 없었다.


어딜가나 사람들과 잘 지내는 친화력은 미국에 와서도 어딜 가지 못하고


내가 데리고 있던 하이스쿨 직원들과 너무 잘 지내다 못해


그 친구들은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시간만 나면 털어 놓았고


그런 시간들을 그 친구들과 나에게는 더 없는 힐링의 시간이였던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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