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오늘이 바로 큰아이의 생일이다

by blandina

큰아이가 한마디씩 꺼내는 말이 내게는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내가 조 씨 아저씨와 별거를 시작한 그날부터,


내가 15년 동안 겪으며 살았던 지옥 같은 삶을 혼자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유도, 수영, 축구를 10년 이상 하며 체격이 남달리 좋았다.


태어날 때도 우량아로 태어나, 나와 함께 다니면 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아드님이에요? 누나 아니에요?”라고 할 만큼,


큰아들은 성숙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 아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허리 32를 입던 아이가 24를 입고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왜 그렇게 살이 빠졌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이는 착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동생이 태어난 뒤 1살이 지나 유치원을 갈 때도 한 번 울지 않았고,


작은 손으로 동생의 기저귀를 가져다주며 나를 도왔다.


학교에서도, 한인 사회에서도, 성당에서도 아이는 착하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아빠가 그렇게 개차반인데 아들까지 나를 힘들게 했다면, 정말 살 수 없었을 거야.”


나는 아들 덕분에 위로를 받으며 견딜 수 있었다.


아이는 내가 부탁한 일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22살이 된 지금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라며


엄마에게 맞으면 죽을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그런 아이가 엄마인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들은 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주의를 주고,


필요할 땐 피임 문제도 함께 해결하며 늘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여자의 몸은 소중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왔다.


남자가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항상 조심하라고 말했다.


큰아이는 고등학교 시절 한 여자친구를 오래 만났다.


내가 미국에 없는동안, 그리고 아빠가 주는 스트레스를 그 만남으로 풀었던 것 같다.


결국,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버텼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아빠와 심하게 다툰 뒤 집을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국에 있고, 친인척도 없는 상황에서 어디 갈 데가 없었다.


아이는 청소년 쉼터에 가 하루를 지냈지만, 앞이 막막해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조 씨 아저씨는 “거 봐라, 어차피 돌아올 거면서 왜 나갔느냐”라며


아이를 질책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한다.


그러다 친구들을 통해 마리화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샌디에이고의 외진 바닷가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그 순간만이라도 현실을 잊으려 했다고 했다.


아이에게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어린 두 동생들 때문이었다.


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서, 그저 마리화나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아이는 학교 성적이 좋았고,


동생들을 아빠보다 더 챙기며 고등학교 시절을 견뎌냈다.


술 한잔하며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이 힘든 걸 알면서도,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하며 울었다.


아이는 “아빠랑 살아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도 이제는 혼자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아이의 진심에 우리는 함께 울었다.


지금도 큰아들은 남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는, 배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아들이기에, 우리 며느리가 21살의 나이에 낚아챘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생화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이는 어머니날과 생일마다 꽃을 배달해준다.


출장 중이거나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때도 여자친구를 시켜 꽃을 보내줬다.


나는 에르메스나 샤넬보다, 아이가 보내주는 생화가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날 부터 우리 둘은 약속을 했다.


절대로 두번 다시는 마리화나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아이는 이제 엄마랑 같이 살거고


엄마가 옆에 있다는것 자체 만으로도 뭐든 할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려서 부터 아이들에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가르친것이


"약속은 왜 하는거지?" 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지키라고!!" 라고 가르쳤다.


그날도 나는 아이와 새끼 손가락을 걸며


나는 "약속은 왜 하는거지?" 라고 묻자,


큰아이는 "지키라고!!"


그날 이후로 아이는 절대 마리화나에 손을 대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약속을 지키고 있으며 미국군병원에서 응급처치 담당자 의무병으로


미국 군인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고 있는 내 아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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