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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남과 동거를 시작하다
by
blandina
Dec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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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도 하고 서버도 하고 학생이자 또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나에게 어떻게든 생활비를 가져다주려고 정말 힘든 몸을 이끌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캘리포니아로 오면서 차를 학생비자로 차를 살 수 없으니
나는 그분에게 내 차를 주고 나는 출퇴근으로 우버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얼마 지나니 새벽 4시에 출근하다 보니 우버 부르기도 힘들다는 게 알게 되고
우리는 차를 한대 더 구입하고 두 집 살림을 하면서 돈이 나가는 것보다
한집에서 돈을 아끼자는 뜻으로 우리는 합치기로 하고 아파트를 얻어서
한집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트럭을 빌려 이사를 하면서도 너무 행복했었다.
맞다.
우리는 얼굴만 봐도 행복했고, 라면만 먹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분은 늘 얘기했다
조 씨 아저씨 때문에 힘들었던 날들만큼 두배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런데 그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그분은 하루하루 나를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게 해 주었다.
때때로 손 편지를 써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운동화를 깨끗하게 빨아서 신발끈을 매주 었고,
본인은 서버를 하고 새벽 2시에 퇴근을 하는데도
매일 새벽 4시 출근하는 나를 위해 일어나 커피를 내려주고 꼭 문 밖에 나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고맙다고 매일매일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이혼녀에 애가 셋이나 딸렸고 9살이나 많은 내가 뭐가 좋았는지
내가 뭐라고 그렇게 사랑을 해줬는지 왜 그랬는지…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후회하고 있다고…
왜 그렇게나 나는 그분을 내 삶에서 밀어내려고만 했는지
자꾸만 이유를 찾았던 것 같다.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레슨을 하는 이유가
그 꼬꼬마들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보러 레슨을 하러 다니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감사편지를 써서 주거나 선물을 받으면 세상 아이같이 기뻐하던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분은 한국에 식구들이 다 있었지만 유난히 첫째 조카를 너무 보고 싶어 했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아줄 수 없으니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분이 결혼을 하자고 해도 내가 거부했던 이유 그리고 결혼하자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내가 일을 못하면 생활이 안되는데
어떻게 애를 낳아서 키우냐고 반색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손주를 볼 상황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그분은 아이를 그렇게 이뻐하는데 안 낳고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 중에 자꾸 그 사람에게 각인을 시키고 있었다.
우린 헤어져야 하고 너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라고…
그러다 그 사람은 큰 결단을 내리고 프러포즈를 했다.
자기는 정말 아이보다는 네가 더 소중하니까 너만 있으면 아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금도 나는 아들이 셋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다.
그분은 우리 아들 셋을 너무 이뻐했다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 아들들은 아빠 보다 삼촌을 더 좋아했다 삼촌은 늘 안아주고 사랑을 주며
같이 살을 비비며 지냈고 항상 같이 밥을 먹고,
엄마가 어떻게 해서 너희를 키웠는지,
지금도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너희들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그분은 운동도 오래 했으며 집안 대대로 해병대를 나왔다.
그분의 작은아버지는 티브이에 나오실 정도로 유명한 해병대에서 유명한 분이시다.
그래서 예절과 어른공경, 바른생활 등등 한국말로 뭐라고
표현해야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모든 인성을 갖춘 사람이다.
어느 날 큰아이와 둘째가 헤드셋을 끼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데
내가 퇴근을 했는데 아이들을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분은 아이들이 게임 끝나길 기다렸다가 아들을 불러 식탁에 앉혀서
엄마나 어른들이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너희들이 무엇을 하고 있던지
꼭 “다녀오셨어요”라고 해야 하는 거고
너희들은 이제 어린아이들이 아니니 엄마가 빨래해주고 밥 해주는 것에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엄마가 빨래를 해서 정리해 두면 각자 알아서
방에 정리는 너희들이 해야 하는 거라고
만약 엄마가 정리해 둔 빨래가 며칠 동안 그래도 있으면
앞으로는 빨래도 엄마한테 하지 말라고 할 거라고 등등…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가르쳐야 하는 기본적인 모든 것들을
나도 아닌 아빠도 아닌 그분이 가르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 삼촌이 만든 김치볶음밥이 젤 맛있다고 하면
애들을 위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고
새벽에 출근했다가 돌아오면 낮잠을 자는 날 위해 낮잠 자고 일어날 시간에
꼭 밥상을 차려 주었다.
세상에 또 이렇게나 깔끔한 남자는 첨 봤다.
어려서부터 기숙사 생활에 선배 선수들 옷을 손빨래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빨래를 잘하고 살림을 잘하고 깔끔한지
결벽증이 있는 나보다 깔끔했던 남자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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