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상, 끝없는 인간 이야기

by blandina

한 달을 일하고 페이를 받을 시기가 되자, 사장님은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때는 내 연봉을 맞춰준다고 하셨던 분이,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발을 빼셨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럼 진작에 말씀하셨으면,


내가 왜 한 달 동안 왕복 2시간 거리 출퇴근을 하며 고생했겠어요?"


속으로 수없이 되물었다.


이야기 흐름을 잠시 멈추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나는 한인타운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 비하 발언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요즘 LA한인타운은 노숙자 문제로 위험하고, 더럽고, 시끄럽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한인타운의 운전 스타일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물론, 나 자신이 얌전한 운전자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마치 "이 세상 끝까지 달려보자!"는 각오로 운전을 한다.

나의 와일드한 운전 실력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타운은 나에게 너무 고단한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사장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매일 출퇴근했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신다고?


사장님의 태도는 정말 황당했다.

스스로를 "한국 커피 1세대"라고 자부하며 자존감으로 가득 찬 분이었다.

커피로 대학 교수도 하셨고, 하와이에 커피 농장까지 있는 분이라고 자랑하셨다.

한국 커피 업계의 대부라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지만,

그런 대단한 분이 정작 남의 커리어에 대해선 눈곱만큼의 존중도 없으셨다.


내가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은 아니지만,

5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에 몇백 개씩 케이크를 만들어온 경력이 있다.

그런 나에게 "그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분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장님, 만약 르 꼬르동에서 공부하고 그런 경력을 가진 셰프라면,

그런 사람은 애초에 한인타운의 작은 베이커리에 이력서를 넣지도 않습니다.

케이크를 만드실 사람을 뽑지 마시고,

스스로 만드셨으면 됐잖아요.


결국 나는 웃으며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도 많다.

그 많은 또라이가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1년 반 동안 내 44년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한국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결과적으로 나는 점점 혼자 고립되어 갔다.

골프도 그만두고, 헬스장도 가지 않았다.

집순이가 되어 모든 것을 집에서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백수가 되기 며칠 전,


아침 심리상담사이자 골프 친구인 쭈니가

링크 하나를 보내며 사이트를 한번 둘러봐 달라고 했다.

시간이 남아서 한참을 둘러본 뒤 쭈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여기 좋은 책들이 많네.


나도 한 번 책을 골라 읽어봐야겠다."


요즘 나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나 학문적인 책은 아니지만,

수녀님, 신부님, 스님들이 쓰신 자서전 같은 책이나 자기계발서를 좋아한다.

최근엔 쇼펜하우어의 책을 구입해 읽고 있었다.


쭈니의 다음 메시지는 뜻밖이었다.

"니가 거기에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사실 22살 때부터 시작된 내 인생 이야기는,

백 권도 넘게 쓸 수 있을 만큼 다사다난 하다고 주변사람들이 늘 말하곤 했다.

쭈니는 말했다.

"넌 경험이 많잖아.


지나온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건 어때?

지금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또 다른 방법이 될지도 몰라."


쭈니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 센치해질 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한 줄씩 끄적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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