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의 시작

by blandina

석달 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연말이었다.

크리스마스에도, 새해에도 나는 일을 했고,


그 와중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어떤 날은 혼자 술을 마시며 울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려 몸을 혹사하다가


집에 돌아와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 크리스마스라며,


새해라며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받은 명품 선물을 자랑할 때,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물건을 주문하고,


하루에도 몇 팔레트씩 도착하는 물건을 정리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는 남이 내게 주는 명품 선물이 부럽지 않다.

그보다 더 값진 것은,


내가 돈이 있어도 명품이 아니라 더 뜻깊은 일에 쓸 수 있을 만큼


마음과 머리가 단단해졌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린 나이에 다 해봤잖아.


사고 싶은 거 다 사보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봤으니 여한이 없어서 그런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한때 명품에 빠져 있었고,


좋은 호텔에서 럭셔리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노느라 바빠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늙어 죽기 전에,


내 몸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보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2025년, 새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사실, 계획을 세울 여유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과연 내가 그걸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이 의문이 너무 커서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말할 수도 있다.

"너는 그러니까 아직도 그렇게 사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이 틀렸다고 반박하고 싶진 않다.

다만,


모든 사람이 노트를 펴고 새해 목표를 세울 만큼 여유로운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버텨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라고.


인생이란 뭘까?

삶이란 뭘까?

어떤 날은 이렇게 사는 것도 감사하지만,

어떤 날은 렌트비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그럴 때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가장 행복한 날이다."

이 말이 이제는 진심으로 이해된다.


양육권을 가져간 조 씨 아저씨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하나둘씩 나에게 보냈다.

결국, 얼마 전엔 아직 미성년자인 막내마저 짐을 싸서 내게 맡겼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몇십만 불씩 들여 이혼 소송을 하고, 양육권을 가져갔던 걸까?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나는 지금 막내를 내 손으로 돌볼 수 있으니까.

매일 밥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주고, 학교에 데려다 줄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빠와 살 땐 한 번도 웃지 않던 막내가,

이제는 짜증보다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봐 준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안아주고,


매일 쓰레기를 버려주고,

덩치는 컸지만, 아직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처럼 여린 마음을 가진 막내를

지금이라도 내가 품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지금 『나는 나를 응원한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조차 나를 응원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며칠 전, 중국에 사는 동생이 카톡을 보냈다.

"나 98년생 여자친구 생김."

사진과 함께 물어왔다. "어때?"


나는 답했다.

"네 인생이야.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지.

니가 좋으면 그걸로 된 거야.

남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나는 지금껏 인생을 그렇게 살지 못했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쉽게 흔들렸고,

귀가 얇았고,

주관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방패막이라도 삼듯, 남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갔는지도 모른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아.

남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리 아이 셋에게 매일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행복한 일을 해.

밥은 먹고 살 만큼만, 딱 그만큼만 행복해도 충분해."


이제는 내가 나를 응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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