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나는 투자이민 사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사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산을 관리해 주던 은행 지점, 부동산을 하던 지점장의 남편,
그리고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투자이민 브로커가 함께 꾸민 계획된 사기극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그 덫에 걸린 건 우리의 선택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때의 선택과 그때의 운이 우리를 이끌었을 뿐이다.
2012년,
우리는 산호세에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에 투자비용 100만 달러를 넣고 이민 절차를 시작했다.
사실,
그 돈은 남미에서 벌여놓았던 사업과 새집을 판 전 재산이었다.
물론 회사에서 굴러가던 자금들은 홍콩, 한국, 미국 어딘가의 은행에 흩어져 있었겠지만,
나는 회사 자금이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그건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전 재산을 모아 투자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임시 영주권조차 나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무작정 가방 몇 개를 싸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처음에는 사기를 당한 줄 몰랐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긴 이혼 소송 과정에서 법무사님들이 재산 분할을 위해 우리가 투자한 호텔을 조사하던 중,
호텔이 이미 거대한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었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우리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가로챘다는 점이었다.
LA 법원과 롱비치 법원에만 15개가 넘는 소송이 걸려 있었고,
투자자는 이미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해버린 상태였다.
그래.
인생이란,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그 현실이 내게 닥치니 참담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씨 아저씨는 지금도 그것이 사기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투자이민 비용 중 절반은 이혼 소송 재산 분할 판결을 통해 받을 수 있었지만,
사기로 인해 날아간 내 위자료는 도대체 누구에게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넣고, 여기저기 편지를 보내며 백방으로 알아봤다.
하지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애초에 돈을 돌려줄 생각으로 사기를 쳤겠는가?
이미 자기 아내 명의로 바닷가에 호화 별장을 여러 채 사두고,
이곳저곳으로 돈을 빼돌린 뒤 파산 신청을 해버렸다.
그 투자자가 난놈은 난놈인게 한국의 미래에셋에 650만불을 사기쳐서
미국 뉴스와 신문에까지 나온 인물이란 것이다.
그런 사람이 100만불 쯤이야 껌값이지 않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6년 동안 이어진 이혼 소송,
그 과정에서 날아간 막대한 변호사 비용,
재산을 나누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사기를 당한 뒤라
내 손에 남은 건 산더미 같은 빚과 내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 조 씨 아저씨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6년 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렸던 공판.
법정에서 조 씨 아저씨의 뒷모습만 봐도 심장이 멎을 듯한 공황장애 발작이 찾아왔고,
공판 전에는 따로 약을 처방받아 먹어야 할 정도였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운 사람을 이제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했다.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다른 사람은 다 만나도, 다시 아빠는 만나지 마.”
그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진심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지난 20년간의 정신적 고통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그저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